뮤지컬 '쿠거'
2015.04.27 17:17
수정 : 2015.04.27 17:17기사원문
"아직 우린 쓸만한 몸매/십 년 동안 목말랐던 나의 몸/레드불 원샷 하고서/레드와인에 취해서/레드 팬티 입고서/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만족스런 한 판, 한 판/나를 뿅가게 해줄 한 판/나이에 맞게 그냥 살기엔/인생은 너무나도 짧아/지금부터는 날 보여줄게/나이가 뭐가 중요해/영계 헌팅, 영계 헌팅, 영계 헌팅!"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뮤지컬 '쿠거'의 첫번째 넘버 '영계 헌팅'의 가사 일부다. 무대 위 세 명의 40대 중년 여성들은 부끄러운 것도 거리낄 것도 없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아들뻘 되는 남자를 사냥하겠다고 나선다.
여성용 자위도구가 등장하고 '오르가슴' '46번 체위' '개X'과 같은 단어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공연내내 즐거워하는 이유는,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쿠거(Cougar)'는 '젊은 남자를 후리는 중년 여성'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북미 지역의 은어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평생 치여 살던 릴리, 대놓고 쿠거를 자처하는 메리 마리, 쿠거를 비난하다가 연하남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는 클래리티의 이야기를 '19금' 언어를 구사하며 유쾌하게 풀었다. 하지만 사실은 중년 여성들의 자존감 회복과 정체성 찾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성들이여, 쿠거가 되라"는 건 결국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주도적인 삶을 살라는 얘기다.
"믿어요/진정한 용기는 바로 내 안에 있었어/당신 안에 있는 그 두려움을 이젠 떠나 보내고/삶의 순간 순간을 포기 마/아직 끝난 건 아니야/들어봐요 당신 안의 목소리를/결국 당신이 사랑이죠."
미국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지난 2012년 초연해 300회 연속 매진 기록을 세운 뮤지컬판 '섹스 앤 더 시티'다.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은 한국 초연은 관록의 중견 배우 박해미.김선경(릴리), 최혁주.김혜연(클래리티), 김희원(메리 마리)의 노련한 무대로 흥행중이다. 200석 규모의 충무아트홀 소극장이 평균 80% 이상 찬다. 이 가운데 중년 여성 관객이 60~70%를 차지한다. 관객들은 배우들 만큼이나 자유롭게 즐거움을 표출한다.
블루스, 재즈, 블랙가스펠 등 다채롭게 구성된 흑인 음악 장르의 뮤지컬 넘버들은 몸을 흔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키보드 두 대와 드럼으로 구성된 라이브 밴드는 작은 규모지만 그루브한 사운드와 리듬을 표현하기에 차고 넘친다. 공연은 오는 7월 26일까지. 전석 6만원. 19세 이상 관람가. 1588-5212
이다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