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③) 계파갈등, 그것은 오로지 금배지를 향한 공천권 투쟁
2015.05.19 16:41
수정 : 2015.05.19 22:16기사원문
"국회의원에게 정권창출 보다 중요한 것은 공천이다"… "정치인의 철학·고집 꺾는 힘이 공천권"
"국회의원에게 정권 창출보다 중요한 것은 '공천'이다."
국회에 있는 의원과 보좌진이 늘 하는 얘기다. 당으로선 정권 창출이 중요하겠지만 의원 개인 측면에선 일자리(?)가 걸린 만큼 공천은 정치권의 핵심 이슈다. 문제는 이런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근원지가 '계파'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20대 총선이 1년도 채 안 남은 시점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공천권을 놓고 계파 간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공천'과 '계파' 간의 역학관계를 고려한다면 두 요소의 연계성을 희석하는 작업과 함께 두 문제를 각각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절실해지고 있다.
특히 보스정치 이후 현재 계파정치로 이어진 폐해를 극복하고, 인물 위주 계파가 아닌 정책 위주의 계파를 생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 성숙되지 못한 정치문화와 계파 간 이해관계를 고려한다면 이런 움직임이 쉽게 탄력받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MB(이명박)정부에서 청와대와 내각에 입성하며 정권의 핵심 역할을 했던 국회의원 10명 중 19대 국회에 입성한 인사는 4명가량이다.
MB정부 정권 창출에 일조하면서 친이(친이명박)계로 분류되던 95명 규모의 여당 국회의원 중 현역 의원으로 자리매김한 의원은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30명가량에 그쳤다.
과거 친이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의 계파 다툼으로 '공천학살'이 반복돼 친이계가 대거 공천 탈락하거나 반타의적으로 불출마를 선택한 탓이다.
'왕의 남자'로 불리던 이재오 의원과 함께 정권 창출을 도왔던 진수희 전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하며 승승장구했으나 공천에서 탈락했다.
고용노동부 장관과 대통령실장을 지냈던 임태희 전 의원은 지난해 재·보궐선거 지역구 공천에서마저 제외됐다. 당시 임 전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모셨기 때문이냐"며 강하게 반발했고, 이후 기반이 약한 다른 지역으로 전략공천됐지만 낙선했다.
과거 정권과 함께했던 친이계들은 이제 당내 비주류(비박계)가 됐지만 박근혜정부가 집권 3년차를 맞이하면서 이젠 친박계가 불안해하고 있다. 친박 인사들의 원내 입지가 새누리당이 당협위원장 교체 작업에 나서자 서청원 최고위원 등이 '친박계 물갈이 신호탄'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등 내부 갈등은 여전하다.
여권 관계자는 "친이계는 친이 직계와 이재오계, 이상득계 등으로 갈려 있었고 몇몇 의원은 특정 계파에 의존한 채 무리한 행보를 보이다 자충수를 두기도 했다"며 "MB 집권 3년차부터 일부 친이성향 중립인사가 친박으로 계파 갈아타기를 시도하면서 미래권력 쏠림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과거부터 계파 유지를 위한 도구 중 하나는 공천권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제1야당'이란 타이틀로 다수의 국회의원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야권 특성상 공천권 논란은 유난히 부각돼 왔다. 이 때문에 야권의 계파는 여권보다 다양하다는 평가다.
1970년대 야권은 DJ(김대중)의 '동교동계'와 YS(김영삼)의 '상도동계'라는 양대 계파로 나뉘었다. 당시 보스정치 시대에는 위에서 정하는 방식의 하향식 공천이 일반적이었다. 3당 합당 이후 동교동계는 비주류와 구별됐고, 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친노(노무현)계는 주류로 부상했고 동교동계로 상징되는 옛 민주계와 갈등이 시작됐다.
10년 동안 집권했으나 야권은 다수의 지도부 교체를 비롯한 분열로 친노계, 옛 민주계, 정세균계, 손학규계, 김근태계, 김한길계, 안철수계 등의 계파로 쪼개졌다.
다양한 계파로 분파되면서 그나마 하향식 공천은 희석됐으나 결국 뚜렷한 구심점 없이 계파가 나뉘면서 분열 양상만 표출됐다. 각 계파 이기주의를 앞세운 공천 논란은 공천 실패로 귀결돼 선거에서 패하는 악순환만 생긴 것으로 지적됐다.
공천과 계파 간 연결고리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최근 미발표 입장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입장문에는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막연하게 친노 패권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온당한지 묻고 싶다"며 "지도부를 무력화시켜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거나 공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사심이 있다면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전직 야권 보좌관 출신 인사는 "현재의 야권은 오히려 기득권 세력에 취해 있다. 집권에 실패해도 제1야당으로 힘을 가질 수 있으니 국회의원 자리라도 확보하기 위한 계파 간 분쟁만 반복되는 것"이라며 "중도소장파 그룹의 목소리가 약해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다툼이 생겨도 변화를 꾀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정치는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그들이 원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인 만큼 계파가 구성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때문에 인물에 얽혀, 특정 인물의 이미지에 편승하는 폐쇄적 계파 구성보다 정책에 따라 유연하게 세력화가 이뤄지는 계파 구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공무원연금 개혁 등 재정문제를 비롯해 대북문제 등 정책 프레임에 맞춰 계파가 구성되는 흐름이 일반화된다면 그나마 계파정치의 부작용이 완화될 수 있다는 논리다.
과거 이념 논리를 앞세운 1차적 대립을 떠나 굵직한 정책 현안에 대한 계파 구성 움직임이 활발해질 경우 정책적 다양성이 야기되고 이에 따른 활동으로 공천심사의 공정성이 일부 확보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재의 이합집산 정치문화와 분열된 계파구조 아래에선 헛된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회의론이 다수다. 익명의 의원 보좌관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국정감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책에 따라 계파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아직 정치권은 위기를 한 번에 잠재울 인물 찾기에만 골몰하고 있어 계파 선진화 작업은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