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글로벌 환율전쟁에 직격탄 맞은 한국기업들
2015.05.26 17:39
수정 : 2015.05.26 19:04기사원문
환율 하락에 '속수무책' 삼성 1분기 8000억 환손실 LG도 6000억원가량 손해 가전·자동차업종 '비상등'
엔화약세 지속땐 타격 커 조선업체 컨선 수주경쟁서 日에 경쟁력 떨어져 피해 현대·기아차 경쟁 힘들어져
"환율이 하락하니 팔아 봤자 돈도 몇푼 남지 않는다. 우리 경쟁국가인 일본 엔화가 갈수록 떨어지니 수주하기도 어렵다. 환율이 힘든 살림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A물산 영업임원)
대한민국 대표기업들이 글로벌 환율전쟁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업종을 불문하고 대한민국 대표기업들은 환율하락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실적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환율하락에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현재는 이를 넘어 수주경쟁에서 밀리고 전체 매출마저 떨어져 기업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늪에 빠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는 환율문제가 미국 달러에 국한되지 않고 일본의 엔화, 러시아의 루블화, 유로존의 유로화 등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 대한민국 간판기업들이 휘청이고 있다"며 "이 때문에 일부 업종에서의 피해 발생이 아닌, 전 업종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가 타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 수익성 악화 주범 '환율'
올 1·4분기 전 업종에 걸쳐 수익성 악화라는 실망스러운 실적을 발표했다. 수익성 악화의 주범은 바로 환율이다. 환율 변동으로 허공으로 사라진 우리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최소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4분기 유럽과 신흥국의 환율영향으로 8000억원가량의 환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가 벌어들인 영업이익 5조9800억원의 14% 정도에 해당하는 규모다.
원화강세가 없었다면 6조78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었다는 얘기다. 특히 TV와 백색가전을 포함한 소비자가전(CE)부문에서 크게 나타났다. 이로 인해 CE부문은 최근 4년여 만에 처음으로 분기 적자(1400억원)를 기록했다.
삼성전자가 수십가지의 통화로 결제하는 등 환위험 최소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을 감안하면 이번 글로벌 환율전쟁의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LG전자도 6000억원가량 손해를 입었다. LG전자 관계자는 "시장점유율이 높고 사업 규모가 큰 유럽 및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신흥국 통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TV사업이 큰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완성차 제조사들도 비상등이 켜졌다. 올 1·4분기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8.1% 감소한 1조5880억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기아자동차 영업이익 역시 30.5% 감소한 5116억원에 머물렀다.
유로화와 신흥국 통화 약세로 수출제품의 수익성이 준 데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유럽과 일본 완성차 업체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낮아진 탓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수천억원의 환차손을 입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환율 하락으로 점유율 경쟁에서도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유로화 약세와 엔화 약세로 독일, 일본 업체들은 수익성이 강화되면서 마케팅 비용을 늘려잡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이를 방어하기 위해 출혈경쟁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의 경우 북미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였지만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업체에 대응하기 위해 딜러 인센티브를 높여야 했다"고 설명했다.
■품질 좋아도 엔화 약세에 '맥 못춰'
환율전쟁 속에서도 엔화약세에 따른 피해가 크다. 일본은 한국 기업과 수출경합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 피해는 환 헤지를 비교적 잘해온 조선업계를 보면 잘 나타난다.
지난 1월 일본 조선업체는 월간 선박수주량이 7년 만에 1위에 올랐다. 액화천연가스(LNG)선과 컨테이너선 위주로 수주하는 일본인데 올 초 대형컨테이너선 발주가 몰리면서 한국 업체를 제치고 일본이 수주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수주 선종의 차이로 이른 시일 내에 위협을 당하진 않겠지만 엔저가 지속될 경우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컨테이너선 수주 방식이 해운사와 연계된 경우가 많아 국내 조선소의 수주는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자동차 업종도 엔저의 대표적인 업종이다. 엔저 현상으로 일본차인 도요타는 지난 2월 2014회계연도 매출이 27조엔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영업이익은 2000억엔이 늘었는데 그중 1750억엔이 환율 조정에 따른 환차익이다. 닛산, 혼다 등 다른 일본 자동차 기업도 경영실적이 좋아지고 있다.
이렇게 좋아진 실적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에 대대적으로 돌입할 경우 현대차와 기아차로서는 경쟁이 더 힘들어진다.
석유화학 업종의 가격경쟁력도 크게 떨어진다. 석유화학은 환율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업종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연평균 900원을 유지할 경우 석유화학 수출은 전년 대비 13.8%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kjw@fnnews.com 강재웅 김병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