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2~3년 더 간다" 하반기 원·엔 환율 800원 중반까지 갈듯
2015.05.29 16:14
수정 : 2015.05.29 16:14기사원문
美·中 경제패권 다툼 속 日 교묘한 줄타기로 수혜 美 금리인상땐 엔저 가속
'슈퍼달러·초엔저 시대는 최소 2~3년간 지속될 것이다. 가장 걱정되는 건 미국이 본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면서 원·엔 환율이 800원대 초중반까지 떨어질 내년과 내후년의 한국 경제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
'미국이 금리인상을 앞둔 반면 일본은 양적완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하반기에 달러당 130엔까지 떨어질 수 있다. 당장의 수출 문제가 아니라 엔화 약세로 수혜를 본 일본 기업의 체질개선에 따른 후폭풍을 고민할 때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초(超)엔저 현상이 지속되면서 국내 기업의 수출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차이로 엔화 약세가 2~3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지난 2012년 100엔당 1510원까지 치솟았던 원·엔 환율이 급격한 하락을 거쳐 900원 미만으로 내려앉았다. 미국 금리인상이 예상되는 하반기에는 800원대 중반까지도 떨어질 전망이다.
■엔화 약세, 2~3년 더 간다
29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초엔저의 전망과 파장 및 대응과제' 세미나에서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향후 2~3년간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한국 수출에도 큰 타격을 안겨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외환 당국이 이렇다 할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자칫하면 원·엔 환율 하락 이후 겪었던 1997년과 2008년의 금융위기가 재연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돈을 푸는 일본과 돈을 거둬들이는 미국의 통화정책이 차이를 보이면서 엔화 약세 기조는 2~3년간 이어질 전망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일본이 양적완화 규모를 이어가는 반면 미국은 금리인상을 앞둔 상황인데다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보유한 자산을 축소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며 "미국에 비해 일본 통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엔화 약세는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도 "일본이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를 2%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양적완화 정책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원화 가치도 떨어지겠지만 엔화보다 그 폭이 작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오 교수는 "2·4분기 100엔당 901.6원을 전망했는데 이미 900원 선이 깨졌다"며 "미국 금리인상이 본격화되면 원·엔 환율이 800원대 초중반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과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대변되는 두 나라의 경제 주도권 싸움에서 일본이 수혜를 보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 팀장은 "AIIB와 TPP 사이에서 일본이 미국에 치우친 정책을 펼치면서 미국이 엔화 약세를 용인하는 분위기"라며 "과거 엔·달러 환율이 120엔 수준으로 올라가면 미국 기업들의 불평이 나오는 것이 정상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수출경합 기업, 경쟁력 악영향
아베노믹스가 출범한 지난 2013년 초에 비해 엔·달러 환율이 43%가량 절하되면서 국내 기업의 수출경쟁력에도 타격을 입었다. 한국의 수출 상위 100대 품목 가운데 일본과 겹치는 품목이 55개로 이 비중이 우리나라 총 수출의 54%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회복되기 시작한 일본 수출은 8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4월 일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8% 늘어났다. 반면 올해 들어 한국의 수출은 4.3% 감소했다.
엔저 효과는 자동차 업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원·엔 환율이 100엔당 1430원 수준이었던 지난 2012년 1·4분기 현대차와 도요타의 영업이익률은 각각 10.4%, 4.2%로 큰 격차를 보였다. 하지만 100엔당 920원 수준으로 떨어진 올해 1·4분기에는 도요타(8.9%)가 현대차(7.6%)를 앞섰다.
도요타의 2013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 영업이익이 2조2921억엔으로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비해 9712억엔 늘어났는데 이 중 9000억엔이 환율 효과라는 분석이다.
일본 기업들이 기업이익 호조를 바탕으로 연구개발(R&D),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체질개선에 나서면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팀장은 "일본의 자동차, 철강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개선되고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던 정보기술(IT) 업체의 이익도 반등했다"며 "일본 기업의 이익 확대가 궁극적으로 제품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면서 국내 수출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장은 "그동안 자동차, 섬유산업은 수출 단가를 낮추는 대신 R&D 투자, 설비 투자를 늘렸지만 이제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공격적인 가격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술과 시장점유율은 엔저 현상이 종식되더라도 되돌리기 어려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sane@fnnews.com 박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