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데뷔 45주년 강화자 베세토 오페라단 단장 "많은 무대 만들어 후배들에게 기회 주고 싶어"

      2015.06.15 17:29   수정 : 2015.06.15 17:29기사원문
한·불 수교 130주년 되는 내년에 프랑스와 첫 교류작 '마농' 추진


지난 5월 10일, 서울 남부순환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무대에서 한 여성 성악가에게 헌사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사랑…그리고 헌정' 음악회는 올해 음악인생 45주년을 맞는 메조소프라노 강화자 베세토 오페라단 단장(사진)을 위한 무대였다. 2시간여 이어진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마지막 곡 김동진의 '목련화' 합창이 이어졌다.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그가 키워낸 16명의 제자가 강 단장을 향해 한마음으로 노래했다. 무대 뒤로는 그의 지난 발자취를 담은 영상들이 이어졌다.
강 단장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며칠 후 서울 서초대로 베세토오페라단 사무실에서 강 단장을 만났다. 그날 얘기를 하는 강 단장은 여전히 감격에 차 있었다. "제자들이 준비한 서프라이즈였죠. 뭐라 표현할 수 없이 벅찬 순간이었어요."

그는 지난 1971년 22세의 나이에 오페라 '아이다' 암네리스 역으로 데뷔한 후 지금까지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메리 위도우' '춘향전' '리골레토' '나비부인' '카르멘' '가면무도회' 등 수십편의 오페라 주역으로 무대를 지켜왔다. 그의 음악여정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가 '대한민국 1호 여성 오페라 연출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982년 오페라 '마술피리'를 무대에 올리며 최초 여성 오페라 연출가의 등장을 알렸다.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다.

연출가로서의 운명은 그가 메조소프라노로 한창 입지를 다질 무렵 찾아왔다. 1973년 미국 맨해튼음대에 유학할 때였다. 어느 날 무대에 선 강 단장에게 지도교수가 적극적인 연기를 주문했다. 오페라는 노래를 잘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자꾸 움츠러드는 강 단장에게 교수는 모욕적인 말을 쏟아냈다.

"겁쟁이(Chicken)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그렇게 할 거면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쳤어요. 눈물이 쏟아져서 무대에서 도망쳤죠."

방으로 돌아가 한참을 울던 강 단장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눈물과 화장이 얼룩져 엉망인 얼굴에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 번뜩 깨달음이 찾아왔다.

"연기라는 게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면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교수가 주문한 동작들을 거울 앞에서 해봤죠. 되더라고요. 그것도 아주 멋지게."

다음 날 무대에 섰을 때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연출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강 단장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일주일에 네댓 번씩 보며 현장을 배웠고, 귀국 후에는 본격적으로 예술감독 일에 뛰어들었다. '토스카' '투란도트' '춘향전' '카르멘' '리골레토' '춘희' 등 많은 작품을 직접 연출했고,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세련된 감각을 인정받으며 2011년에는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로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을 수상했다.

1995년 창단한 베세토 오페라단은 베이징, 서울, 도쿄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꿈을 담은 이름이다. 베세토 오페라단은 2002년 일본 도쿄와 중국 베이징을 시작으로 독일, 우크라이나, 체코, 이탈리아 등에서 K-오페라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올해 말에는 이탈리아 거장 프랑크 제프리가 연출하는 오페라 '아이다'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한·불 수교 13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프랑스와 처음 교류하는 오페라 '마농'을 추진 중이다. 또 내년에는 터키 야외극장에서 직접 '리골레토'를 연출한다.

강 단장에게는 사명감이 있다. 평생 홀로 걸어야 하는 후배 예술가들의 외길에 동행하고 싶다.
그는 오는 10월께 '베세토 콩쿠르'를 만들기 위한 물밑 작업을 거의 마쳤다. 벤베누토 프란치 국제콩쿠르 예선을 한국에서 치르는 방식을 통해 국내 실력 있는 음악가들이 국제콩쿠르 무대에 설 기회를 열어줄 계획이다.


"지난 45년간 예술가로서 외길을 걸어오면서 많은 은혜와 도움을 받았어요. 이제는 돌려줘야죠. 자비를 들여서라도 더 많은 무대를 만들고,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어요. 남은 삶은 음악으로 선교하며 살고 싶습니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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