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前 국무총리)

      2015.06.23 17:15   수정 : 2015.06.23 17:15기사원문
"한국경제 고질병인 양극화·저성장… 동반성장이 단기해법"
대기업은 기술 없어 투자 안하고, 中企는 돈 없어 투자 못해
초과이익공유는 대기업 몫 뺏는게 아니라 파이 키우자는 것
메르스 대응 미흡했지만 서울·세종으로 정부조직 나뉜 탓도


서울대 총장 출신이 서울대 인근에 사무실을 열었다. 당초에는 중소기업이 많이 몰려 있는 서울 구로동 G밸리에 터를 잡았지만 높은 임대료 때문에 제자들이 있는 근방으로 옮겨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동반성장연구소 정운찬 이사장 이야기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점점 상승하고 있는 부동산시장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 경제학자로, 대학 총장으로, 국무총리로 그리고 지금은 '동반성장' 화두를 곳곳에 전파하고 있는 정 이사장의 경제를 보는 시각과 처방전은 분명했다.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 되고 있는 저성장과 양극화, 그리고 이를 위한 단기적 해법으로 동반성장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투자를 하고 싶어도 투자할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기업들을 위해선 연구개발(R&D) 지출을 개발(D)이 아닌 연구(R)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중소기업에는 대기업의 초과이익이 흘러들어가도록 하고, 적합업종 강화 등을 위해 자생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복지는 보편적이기보다는 선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돈 있는 사람이 일정 정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의 증대는 불가피하지만 부족한 재원은 사회적 합의를 거친 증세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정 이사장을 파이낸셜뉴스 창간 15주년을 맞아 특별대담 형식으로 서울 봉천동에 있는 동반성장연구소에서 만났다.

대담 = 조석장 정치경제부장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문에 난리다. 우리 사회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은데 총리를 하셨던 경험으로 한 말씀 해 달라.

▲지난해 세월호 사고 때와 같이 국가의 총체적 난맥상이 고스란히 재현됐다. 2009년 9월 총리로 부임할 무렵 신종플루 추정환자가 발생하자 그날 보건복지가족부(현 보건복지부)에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를 설치하고 국무총리실은 관계부처 일일상황 점검 체계를 즉시 구축한 바 있다. 또 총리와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가족부 장관과 공동 명의의 대국민 담화문을 내고 국민의 동요를 잠재우려 노력한 것도 기억이 난다. 결국 현 정부의 재난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해 메르스는 은폐된 가운데 확산됐고 국민과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원인은 서울과 세종시 그리고 충북 오송으로 나뉘어 있는 정부 조직 때문이다. 의사결정자들이 차분하게 한자리에 앉아서 의사를 결정하기가 힘들었고, 메르스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데도 역부족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경제회복 과정에서 복병이 만만치 않다. 현재의 한국 경제를 진단해 달라.

▲지금 우리 경제는 저성장과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1980년대 8%대 성장하던 것이 지금은 2~3%대 성장에 머물러 있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1997년에는 0.26이었는데 지금은 0.35를 넘어서고 있다. 높지도 않은 경제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삼성, 현대·기아차, LG, SK 등 재벌의 매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60%가량을 점할 정도로 대·중소기업 간 실적 편차도 극심하다. 투자해야 할 재벌은 넘치는 자금을 사내유보하고, 우리나라 고용의 88%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은 투자할 곳은 많지만 자금이 없다. 소비도 좋지 않다. 소비가 힘든 것은 1000조원이 훨씬 넘는 가계부채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많으니 허리띠를 졸라맨다. 소득도 올라가지 않는다. 배당소득은 외국인 배당이나 기관투자가 배당으로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이자소득도 금리가 낮아 점점 내려간다. 임금은 하방경직성이 강해 기업들이 임금을 쉽게 올려주지 않는다. 소득 증대를 통한 소비 증진정책이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결국 소비 및 투자 위축은 성장둔화와 양극화의 심화를 가져온다. 이는 곧 '양극화 심화→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부실 누적→내수부진→성장둔화→양극화 심화'로 이어지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 투자와 소비, 어떻게 살려야 하나.

▲투자는 과거 김대중정부 때부터 현 박근혜정부까지 17년간 부진한 상황이다. 투자부진이 규제 때문만은 아니다. 그럼 투자가 왜 안 될까. 투자는 기업이 한다. 대기업이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400조~500조원 쌓아놓고도 투자를 안하는 것은 투자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첨단 기술도 없다. 특히 대기업은 첨단 기술이 있어야 투자를 한다. R&D 지출이 세계 5등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이 개발 관련 지출이다. 연구 지출이 적다. 외국에선 우리의 R를 '리서치(research·연구)'가 아닌 '리파인먼트(refinement·개조)'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우리 경제가 도약하려면 R&D 지출(비중)을 D에서 R로 방향전환해야 한다. R도 리파인먼트가 아닌 리서치로 나가야 한다. 중소기업은 어떤가. 중소기업은 중저위 기술이라 하더라도 투자를 하려 한다. 그런데 돈이 없어 투자를 못한다. (중소기업엔) 돈을 제공해줘야 한다. 대기업으로 갈 돈이 자연스럽게 중소기업으로도 흘러들어가게 해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초과이익공유제이고 중소기업적합업종이다. 정부 발주도 중소기업 위주로 바꿔야 한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이 투자·생산하고 고용이 확대된다. 그럼 (국민)소득이 늘고, 소비가 증가한다.

―저성장 그리고 양극화의 해법을 동반성장에서 찾고 있는데, 좀 더 설명해 달라.

▲동반성장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경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단기적 성장전략으로서의 동반성장은 국민경제의 선순환을 말한다. 국민경제의 선순환 중 하나는 부자·대기업·성장산업 등 선도부문의 성장 효과가 아래로 잘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낙수효과다. 하지만 선성장·후분배의 불균형 성장전략만 지나치게 추구하다보니 연결고리가 끊겼다. 이 고리를 다시 이어야 한다.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거래에서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탈취 등과 같은 불공정 거래 관행을 근절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골목상권 보호도 필요하다. 또 불법과 편법, 경제력 남용이야말로 시장경제를 파괴하는 요소다. 하도급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의식적 배려와 적극적 지원도 필요하다. 이를 분수효과라고 부를 수 있다. 낙수효과의 정상화가 가장 기본적 과제이지만 이것만으로 한국 경제가 봉착하고 있는 양극화와 저성장 문제를 극복하기엔 충분치 않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중소기업 위주의 신산업정책으로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동반성장이 성공하기 위해선 대통령의 확고한 철학과 실천의지가 중요하다. 재벌 총수의 인식 전환도 필수다. 대기업이 혜택을 베풀라는 것이 아니라 초과이익이 나면 그 일부를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에 나눠주라는 것이다. 초과이익의 적지 않은 부분은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기인한다. 동반성장은 20세기와 구분되는 21세기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다.

―동반성장을 단기적 성장전략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장기적 성장전략은 뭔가.

▲단기전략은 동반성장, 중기전략은 대기업의 투자를 늘리기 위해 'R' 중심으로의 R&D 지원구조 전환이다. 장기전략은 바로 교육혁신이다. 국민 모두가 창의성을 가져야하는데 그게 교육에 달렸기 때문이다.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서 양극화가 고착화되고, 그에 따른 심신의 스트레스가 과중한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의 심신을 건강하게 길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당당한 자신감을 갖도록 심신을 단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을 '지덕체' 중심에서 '체덕지'로 전환해야 한다. 또 창의성 제고를 위해 학교나 기업, 정부 등 모든 조직을 다양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에 필요한 개혁 중 하나가 바로 대학의 숫자와 규모를 줄이는 일이다. 우수한 교육이란 또 낯선 상황, 나아가 위기에 적응하는 능력과 역경을 극복하는 능력을 갖춘 미래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의 지도자들이 일찍부터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신감과 융통성을 겸비하도록 해줘야 한다.

―잃어버린 20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또 일본의 '엔저' 등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도 원화가치 절하 등 환율전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저성장과 경기침체, 부동산 버블화 경향,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 일본을 닮아가는 게 문제다. 그러나 일본이 세계에서 1~2위의 제조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일본은 항상 위기의식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기초를 튼튼하게 만들어왔다. (무제한 양적완화와 같은) 통화완화도 기초가 튼튼해서 효과가 있다. 그런 차원에선 우리나라가 일본을 닮는 것만으로도 좋겠다는 생각이다(웃음). 결국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선 선성장·후분배라는 낙수효과의 미망에서 벗어나 소득 주도 성장, 임금 주도 성장, 고용 주도 성장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동반성장 실천과 더불어 남북관계 개선도 시급하다. 5·24조치는 좀 더 유연하게 다뤄져야 한다. 환율전쟁과 관련해선 한국 대기업은 오랫동안 '원저'를 누렸다. 지금도 원화가치가 낮다. 우리나라는 환율 조정이 쉽지 않다. (기업들은) 환율을 이야기하기보다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

―복지 수요는 늘어나는데 세금이 덜 걷히며 나라 재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해법은.

▲복지는 선별복지를 해야 한다.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집중돼야 한다는 말이다. 급식, (물론) 찬성한다. 그러나 돈 있는 사람은 좀 내야 한다. 서울 강남의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복지 수준은 아주 낮다. 복지예산도 (앞으로) 더 필요할 수밖에 없다. 어려운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복지 수준 역시 높여야 한다. 그 대신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

―최근 한국은행이 금리를 1.5%까지 낮췄다. 또 시장에선 정부에 추경예산을 편성하라고 부추긴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은 총재가 '(기준금리는) 1.75% 이하로 내려갈 수 없다'고 말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견디지 못하고 정무적 판단을 했던 것 같다. 한은 역시 정부가 추구하는 목표와 크게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한다. 한은의 독립은 정부 내의 독립과 함께 시장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하다. 시장이 막 떠들어대도 한은은 확실한 스탠스를 갖고 일해야 한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1.5%는 이해가 안 간다. 추경과 관련해서 난 케인스주의자다. 추경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부의 구체적 방안과 재원조달계획이 우선시되지 않는 추경은 문제가 많다.

정리=bada@fnnews.com 김승호 박소연 기자


■정운찬은 누구인가

'동반성장 전도사.'

서울대학교 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의 최근 행보를 대표하는 말이다. 조순 전 총리,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국내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정 이사장이 진단하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저성장'과 '양극화'다. 정 이사장은 이들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시급한 대안으로 '동반성장'을 꼽고 있다.

전 정권에서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총괄하는 위원회 설치의 필요성을 역설, 2010년 8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같은 해 12월부터 초대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펼친 것도 이 같은 소신과 통찰력에서다.

당시 중소기업계에선 총리 출신의 거물급 초대 위원장에 거는 기대가 상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기업들의 1·2차 하청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축소, 중소기업들이 개발한 기술 탈취 가속화, 도를 넘는 인력 빼가기 등이 이어지고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한창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던 때였다.

특히 정 이사장이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으며 내놨던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를 놓고 "경제학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누가 만들어 낸 말인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날 선 비판을 했다.


의도 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초과이익공유제는 이건희 회장의 이 발언으로 '노이즈 마케팅'에 성공하는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동반성장 화두는 현재 진행형이다.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은 '더불어 잘사는 사회'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사회' '꿈과 도전을 기대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모두 함께 만들어가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약력 △68세 △충남 공주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행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금융학회 회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학장 △서울대 23대 총장 △한국경제학회 회장 △국무총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현)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현) △도쿄대학 총장자문위원(현)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