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배우중심 연극 첫 작품 '키 큰 세 여자'...박정자-손숙 한 무대에
2015.09.16 19:27
수정 : 2015.09.16 19:27기사원문
'드라마의 꽃이 작가, 영화의 꽃이 감독이라면 연극의 꽃은 배우다.' 국립극단이 '배우 중심의 연극을 하겠다'고 선언하며 선보이는 첫 연극에 박정자(73)와 손숙(71)이 함께 출연한다. 오는 10월 3~23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키 큰 세 여자'에서다. 명실공히 한국 연극계의 대모로 불리는 두 여인이다.
공연 개막을 약 2주 앞두고 서울 대학로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고3 수험생이 막바지 수능공부를 하듯 치열하게 연습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50년 넘게 연극을 하면서 이렇게 어려운 작품은 처음이에요. 인생을 살며 크고 작은 산을 만났지만 이번엔 정말 큰 산을 만났어요. 대본 속에 복병이 너무 많네요. 모두 '연습만이 살길이다' 이런 마음이에요."(박)
"제가 합숙하자는 얘기까지 했어요. 하하. 박정자 선배랑 오랜만에 함께 하니까 좋아요. 열심히 하시니까 안 따라갈 수가 없어요. 매 작품 소홀히 하지 않지만 오랜만에 정말 뭔가 하는 것 같은 느낌이죠."(손)
'키 큰 세 여자'는 미국 현대희극의 거장 에드워드 올비가 1991년 발표한 자전적 희곡이다. 박정자는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90대 할머니 A를, 손숙은 A의 변덕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하는 50대 간병인 B를 맡았다. 자신이 늙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하는 20대 C는 국립극단 시즌단원 김수연이 연기한다. 세 사람은 각각 다른 인물이지만 A의 분신이기도 하다. 셋은 서로의 과거와 미래인 셈이다.
이 작품 연출을 맡은 이병훈은 "젊은 배우들과 작품을 하면 연기 가르치느라 에너지를 다 뺏기는데 이번엔 연출다운 연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키 큰 세 여자'는 배우 잡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1막은 리얼리즘, 2막은 표현주의로 분위기가 다른데다 치매 노인의 맥락없는 대사, B의 1인 2역까지 '혼이 쏙 빠지게' 복잡하기 때문이다. 손숙은 "준비하는 우리는 어려워도 관객은 전혀 그런 생각을 못할 작품이라 억울하다"며 웃었다. 박정자는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내 인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자와 손숙이 한 무대에 서는 건 지난 2008년 연극 '침향' 이후 7년 만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전우'라고 불렀다.
"무대에서 전쟁을 잘 치르려면 옆에 있는 전우들이 잘해줘야 하잖아요. 손숙은 너무 소중한 전우죠. 무대에서 겨룰 대상이 있는 건 큰 행운이에요. 늘 긴장감을 주니까."(박)
"너무 힘들고 배고파서 연극을 안 한다고 한 적도 있어요. 그때마다 선배가 '연극을 해야 손숙이 손숙이지'하면서 저랑 씨름을 했어요. 이런 선배가 있다는 게 참 감사하죠."(손)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