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뿌리 대신 이혼을 선택한 '돌싱들'

      2015.10.19 14:40   수정 : 2015.10.19 16:09기사원문
"4주후에 봅시다." 이는 이혼법정 드라마의 마지막 멘트로 어느 부부는 4주의 조정 시간을 가진 뒤 '남남'이 되며, 동시에 이들에게는 '돌싱'(돌아온 싱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백년가약을 약속하고 부부의 인연을 맺었던 이들에게 이혼이란 아마도 처음부터 계획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일 년 동안 결혼한 부부가 3쌍이라면 그중 1쌍 정도가 이혼을 선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젊은 부부의 이혼 못지않게 황혼이혼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어느 순간 우리는 OECD국가 중 아시아에서 최고의 이혼율을 기록한 나라가 됐다

물론 이혼사유는 부부불화가 으뜸이고, 경제문제도 주요인이지만 어쨌든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한다거나 '부창부수'(夫唱婦隨)란 말은 색이 바래버렸다. 우리 주변의 '돌싱'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부분 돌싱은 '화려한 싱글'을 꿈꾸고 이혼을 선택했으나 경제적인 문제과 육아 부담 등의 문제로 '고단한 싱글'이라고 털어놨다. 특히 돌싱은 고고한 자세로 '외로움'이라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으나 새로운 이성의 접근을 방어하고 차단하기만 했던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반면 과거에는 이혼이 큰 흠결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당당하게 이혼사실을 밝히고 재혼, 삼혼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배우자의 이기적인 행동들은 한 평생을 함께 부부를 황혼이혼으로 이끈다. 이들 노년의 돌싱들은 '이혼'라는 수식어는 부담 없다고 했다. 다만 자식들에게 다소 민망할 뿐이라고 한다.

■"화려한 싱글…글쎄요"

"이제 이혼한 지 3년을 넘어섰다. 이혼을 너무 얕봤다. 특히 싱글맘 노릇, 만만한 게 아니었다."

서울 대치동의 박미혜씨(가명)는 1976년생이다. 그는 2년간 별거 생활을 하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이혼을 선택했다.

이혼 초 박 씨에겐 바람이 있었다.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위자료와 전 남편에게 매달 양육비를 받을 수 있어 딸 아이 하나는 잘 키울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혼 9개월 후 부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매달 입금될 것으로 믿었던 양육비가 제때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남편이 의사인데 전 남편 역시 자신처럼 딸아이를 무척 사랑한 아빠'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던 대가였다.

그는 양육비가 수차례 미지급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제 자식에게 쓰는 돈인데? 법원에 양육비 지급명령 소송을 해야 하나? 그러던 중 양육비가 5개월째 입금되지 않아 전화를 하니 '양육비를 줘도 아이에게 쓸지 의문이니 매달 사용내역을 보내라'는 말을 들었다. 한마디로 '너 한 테는 한 푼도 없다'라는 얘기였다.

자존심 때문에 "어떤 도움도 필요 없으니 양육비는 적금에 넣든 나중에 딸아이가 성장하면 직접 줘라"는 말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혼 초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찾도록 도와준 뒤 전공을 살려 음악학원을 개원하려 했던 계획은 바로 수정됐다. 그는 딸아이를 방과 후에 할머니 집에 맡긴 채 집 근처 마트캐셔로 취직한 뒤 이제 오후 9시가 다 돼야 집에 온다. 그는 '화려한 싱글'이 아닌 딸에게 그냥 '고단한 엄마'이며, 부모에게는 '걱정스런 딸'이 돼가고 있다.

실제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결과, 한부모 가정의 약 83%가 이혼 후 단 한 차례도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법원에서 양육비 지급 판결을 받아도, 실제로 이행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22.6%에 불과했다.

■쿨한 척…메마른 감정으로 이어져

"한번 했습니다. 되게 빨리 갔다 왔어요." 김영수(30대 중반·가명)씨는 쿨하게 돌싱 사실은 공개했다. 김 씨는 배우자의 성격 탓으로 6개월 동안의 짧은 결혼 생활을 정리했다. 5년 전 얘기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법적으로 이혼 절차를 밟지 않았다. 아울러 그는 법적으로는 여전히 미혼이다. 그렇다고 본인 스스로를 싱글이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그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만 직장동료 등 결혼식에 온 지인들이 있는 만큼 굳이 결혼한 사실을 감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친지나 친구들의 만남은 재혼 언제 하느냐 묻고 또 묻고 언제나 영혼 없는 걱정들이었다. 영혼 없는 걱정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익숙해진 현실로 자리 잡고 있다. 오히려 고고한 자세를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실에 은근히 뿌듯했다.

그런 그가 이 같은 태도를 주변에 돌싱에게는 절대 권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쿨하다'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이뤄지는 이중적인 태도는 그의 생활을 기형적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 있는 시간을 제외한 그의 나머지 사회활동은 모두 외톨이 행태를 보이고 있다. 김 씨는 하루 24시간 중에 근무시간인 8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내고 있다는 것.

그는 "이렇게 살다간 완전… 감정이 메마른 살벌한 사람이 될 것 같아요"며 "이제는 방어적 프로그램을 통해 주변사람을 방어하고 차단하기만 했던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황혼이혼에 이어 황혼재혼도 증가

"외롭기도 하고 혼자 살다 옆에 아무도 없이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공포가 짝을 찾게 한다."

전 남편의 계속되는 부정과 억압적이고, 이기적인 행동들은 최현자(61·가명)씨를 2년 전 황혼이혼으로 이끌었다. 그는 콜라텍을 자주 찾는다. 이곳에서는 남녀 노인이 짝을 지어 찾는 일이 적지 않고, 외제차를 끌고 온 노인이 인기를 끄는 등 젊은 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데이트 풍경을 연출한다고 한다.

자식들이 모두 출가한 뒤 1년 만에 이혼을 선택한 그는 현재의 삶에 만족해했다. 이혼 초기와 달리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남친이 생기면서 안정감이 생기고 외로움과 성적 욕구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남친과 '동거'를 하기로 약속했다. 재혼까지 생각했지만 멀리 사는 자식들이 알면 반대할 게 분명해서다.

그는 "합법적으로 떳떳하게 살고자 재혼을 생각하는데 문제는 자식들"이라며 "혹여 나중에 유산 문제로 양쪽 자식들이 싸울 것이 걱정돼 동거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30년 넘게 살다 헤어진 부부 비율이 전체 이혼에서 2010년 7.5%, 2011년 7.9%, 2012년 8.6%, 2013년 9.4%, 지난해 10.3%로 갈수록 증가한다. 또한 60세 이상 남자의 혼인은 2010년 4800명에서 2011년 4900명, 2012~13년 각각 5100명에 이어 지난해 5200명으로 늘었다.
같은 연령 여자의 혼인도 2010년 1900명에서 2011년 2100명, 2012~13년 각각 2300명에 이어 지난해 2400명으로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yoon@fnnews.com 윤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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