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은행 영업시간 연장 "점심땐 대기시간만 30분" vs. "탄력점포 열어도 고객 적어"
2015.11.08 17:47
수정 : 2015.11.09 16:04기사원문
지난달 11일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연차총회 참석차 페루를 방문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던진 한 마디가 일파만파 은행업계를 흔들었다.
예상대로 은행 직원들의 반응은 현실과 거리가 먼 지적이라며 일제히 성토했다. 인터넷상에서는 '우리가 문 닫으면 노는 줄 아느냐 '는 댓글이 이어졌다. 은행이 셔터를 내린다고 업무가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오래 전 상식이 됐다는 얘기다.
시중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는 김모씨(24.여)는 "최근엔 집단대출 서류를 처리하느라 밤 11시까지 정신없이 일한 날이 태반"이라며 "최 부총리에게 '하루라도 은행에 와서 일해보라'고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 영업시간 연장은 낮 시간 은행 방문이 어려운 직장인을 중심으로 고려해볼 만한 좋은 아이디어라는 분위기가 확산되기도 했다. 몇몇 시중은행장은 최 부총리의 발언에 업무시간을 조정.연장하는 '탄력 점포'를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은행의 영업시간 연장에 대한 직장인 및 은행 관계자들의 솔직한 얘기를 가감 없이 들어봤다.
■점심시간엔 대기시간만 30분
회사원들은 평일에 은행을 이용하기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충남 천안의 무역업체에서 일하는 성미진씨(29)는 은행 직원들이 밤 늦게까지 일하는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직장인들을 위해 영업시간이 연장됐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적금 가입.해지 등 은행 지점을 꼭 방문해야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점심시간 은행에 갈 때마다 대기시간이 기본은 30분"이라며 "점심을 못 먹고 은행업무를 볼 때도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 강원구씨(32)는 "회사 안에 은행이 몇 개나 있는데도 평일에 바빠서 도저히 갈 수가 없다"면서 "주말에 은행을 이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인터넷.스마트폰 뱅킹 비밀번호를 연속해서 틀린 경우에는 은행을 방문해야 하는데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분실한 체크카드를 재발급받을 때도 일부 은행은 지점을 찾도록 해 은행 점포를 찾아야 하는 일이 예상외로 많다는 하소연이다.
■'찔끔' 연장, 어차피 도움 안돼
반면 영업 연장의 혜택은 실제로 크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도 있다. 대기업 연구원인 김용환씨(32)는 "인터넷.모바일 뱅킹 사용자가 늘어나는데 굳이 오픈시간을 늘리는 건 보여주기식 행정인 것 같다"면서 "결국 은행원들의 근무시간만 늘릴 것"이라고 봤다. 회사원 김성태씨(34)도 "직장인 대부분은 어차피 점심시간에 은행에 간다"면서 "차라리 점심시간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소비자에겐 좋겠지만 시장 논리엔 안 맞을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허모씨(32)는 "은행이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연장영업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부총리가 '툭' 한 마디 했다고 연장영업을 검토한다는 게 좀 어이가 없다"고 했다.
■시스템 개선도 난망
최 부총리 발언 이전에도 은행들은 점포 특성에 따라 업무시간을 조정.연장하는 '탄력 점포'를 이미 운영하고 있다. KB국민.신한.KEB하나.우리.NH농협은행 지점 가운데 374곳이 오후 4시가 넘어도 문을 연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한 예로 우리은행 서울 선릉중앙지점은 2013년에 오후 7시까지 문을 열도록 했지만 찾는 고객이 많지 않아 다시 일반 점포로 전환했다. 수요가 있는 곳을 찾아내 은행과 고객이 윈윈한다면 좋겠지만 반대의 경우 비용이 만만찮다. 더욱이 금융당국이 임금체계 개편으로 판매관리비를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운영비용을 높이는 영업시간 연장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영업시간을 대대적으로 늘리려면 시스템 개선도 필요하다. 은행권 전산시스템은 오후 4시 마감에 맞춰져 있어 다른 기관과 연동되는 업무에는 지장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영업시간 연장이나 휴일 개점을 대폭 확대하려면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 시스템 개선을 논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기관 간 협의 움직임은 아직 은행권에서 감지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명동, 신촌, 시청, 광화문 등 일부 거점 지역에 연장영업을 하는 탄력점포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각 은행이 수익성을 분석해 자율적으로 운영토록 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부총리의 발언에 '움찔'한 은행권의 영업시간 연장 '검토'가 '실행'으로 이어질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mrchoi@fnnews.com 최미랑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