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역사가 머무는 곳, 대구로 떠나는 시간여행

      2015.11.19 18:38   수정 : 2015.11.20 09:31기사원문






【대구=이정호 선임기자】 현재의 나에게는 싫든 좋든 따라다니는 과거 삶의 족적이 있다. 팔공산과 비슬산 등으로 둘러싸여 인구 250만명을 품고 있는 대구광역시도 마찬가지다. 선사시대부터 면면하게 이어온 자연과 역사의 흔적이 대구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특히 대한제국 시기 서양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구시는 근대도시로 탈바꿈한다. 대구시에서는 대구만의 특색이 반영된 대구명품관광코스를 마련해 관광객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대구명품관광코스는 팔공산힐링코스, 모노레일 도심관광코스, 안동, 경주와 연계된 광역관광코스 3개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 세부 코스로 또 나뉘어 총 11개 코스가 있다. 모노레일 도심관광코스 중에서도 인기가 많은 대구 근대골목 투어는 5가지 코스로 이뤄져 있다. 그 중에서도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을 걸으며 대구의 최근 100여년간 세월의 흔적을 더듬어보자.

■청라(靑蘿)언덕에서 출발

'근대문화골목'은 대구 중구 동산동 현재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이 있는 청라(靑蘿)언덕에서 시작한다.
청라언덕은 대구에 기독교가 뿌리 내려 성장한 중심지이며 학창시절 대부분의 학생이 불러봤던 '동무생각'의 노랫말 배경이 된 곳이다.

'동무생각'은 대구가 낳은 한국근대음악의 선구자인 박태준(1900~1986)이 자신의 연애사를 교분이 있던 시인 이은상이 듣고 쓴 시에 다시 곡을 붙인 가곡이다.

청라언덕에 올라서면 1893년부터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 선교사들이 짓고 살았던 주택이 보인다. 붉은 벽돌집에 담쟁이 넝쿨이 벽을 휘감고 있어 인상적이다. 지금은 의료·선교 관련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근대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바로 옆에는 대구제일교회가 우뚝 서있다. 대구제일교회는 조선 말기인 1893년 설립된 경상북도 및 대구지역 최초의 개신교 교회다. 중구 남성로에 있는 옛 예배당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됐으며 지금의 교회는 동산동 전 영남신학대학교 부지 일대에 새 성전을 건축해 1994년 6월 이전하고 2002년 4월에 헌당됐다. 골목투어의 출발점에는 한국기독교의 역사가 서려 있어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90개의 계단 '3·1만세운동길'

청라언덕 '동무생각' 노래비 옆에서 시내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90개의 계단이 있다. '3·1만세운동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학생들이 도심으로 모이려고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지나다녔던 솔밭길이다. 계단길 옆으로 3·1만세운동 당시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돼 있어 의미를 더해준다. 3·1만세운동길의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면 큰길 건너편에 계산성당이 보인다. 처음에는 한식 기와집으로 지었던 천주교 성당이다. 화재로 전소된 후 1902년 재건돼 지금에 이르렀다. 프랑스 신부인 로베르가 설계했으며 영남 최초의 고딕양식 성당으로 우뚝 솟은 쌍탑이 고풍스러움을 더한다. 야간조명이 설치돼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성당 내부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때 순교한 성인들이 한복 입은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골목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근대와 현대가 구불구불 이어지는 드라마틱한 골목길이다. 그가 나고 자란 고택에는 이상화 선생의 초상화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 구절이 벽면에 새겨져 있다. 이상화 고택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 고택과 나란히 자리해 있다. 옆에는 대구 근대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가 나온다. 개발정책이 추진되며 초고층건물이 건설될 때 철거될 뻔했는데 시민들의 서명운동과 후원으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계산예가 전시관에서는 대한제국 시기, 일제강점기, 광복 이후 한국의 모습들을 영상과 자료로 만날 수 있다.

옛 제일교회와 약령시한의약박물관, 진골목, 화교소학교로 이어지는 제2코스는 길이 1.64㎞에 불과하지만 건물이며 길 등이 거대한 노천박물관을 이루고 있어 제대로 보려면 2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해설사와 함께 골목 투어를 떠날 수 있다.



■젊은이도 찾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제2코스는 아니지만 골목길 투어에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빼놓을 수는 없다. 길 이름에는 김광석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다'라는 의미와 김광석을 '그리워한다'라는 의미가 중의적으로 담겨 있다.

원래는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중구 달구벌대로 450길 방천시장 동편, 신천대로 둑길 350여m 공간에 조성됐다. 이 길은 1964년 대구 대봉동에서 태어나고 1996년 서른셋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가수'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한 벽화거리다. 일대에는 김광석의 초상화와 조형물 등 다양한 장르의 70여점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매년 새로운 벽화가 계속해서 다시 그려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활짝 웃는 김광석 초상화가 많아지고 있다. 김광석 동상이 반겨주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그의 노래가 정겹게 들려온다.
가게마다 제각각 음악을 틀어 내보낸다면 소음처럼 들릴 수도 있을텐데, 거리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한 곡씩 흘러나오기 때문에 발걸음을 옮겨도 노래 한 곡을 온전히 듣을 수 있다. 주옥 같은 가사를 담은 그의 노래는 대부분 애잔하지만 듣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위로를 준다.
그래서 그를 기억하는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이들까지도 이 거리를 찾고 있다.

jungle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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