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불명·실화로 인한 배상책임은 누구에게?
2015.12.06 17:50
수정 : 2015.12.06 17:50기사원문
원인이 불명확한 만큼 임차인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법원은 임차물 보존을 위한 주의의무를 다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임차인이 화재로 입은 손실을 책임져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인 미상의 화재 시 대체로 임차인이 화재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면책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판례의 흐름인 점을 고려할 때 건물주(임대인)의 보험 가입여부와 상관없이 별도로 화재보험에 가입해 두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차인 관리영역서 발생시 책임져야"
6일 법조계에 따르면 크라운제과는 이모씨가 소유중인 경기 고양시 문봉동 일대 건물 창고 및 부속 토지를 임차, 물류창고로 사용하던중 2009년 12월 물류창고 앞쪽에 적재된 플라스틱 파레트에서 불이 나 물류창고와 옆 창고가 전소됐다.
경찰과 소방서는 파레트에서 난 불을 원인미상으로 결론지었지만 이씨에게 화재 보험금을 지급한 현대해상은 "크라운제과 측이 파레트 쪽으로 불씨가 날아갈 수 있는데도 난방용 깡통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며 구상금 소송을 냈다.
1.2심은 "깡통의 불씨가 파레트에 옮겨 붙어 화재가 났다고 볼 수도 없는 이상 깡통 설치만으로 피고가 임차인으로서의 관리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볼 수 없다"며 크라운제과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화재는 피고의 지배영역에서 발생했다"며 "임차인이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음이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지난달 파기환송심은 "화재와 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직원들이 깡통에 불을 피워놓은 채 상당한 시간 자리를 비우는 등 관리를 소홀히 했다"며 크라운제과 측에 창고 소실로 인한 보험금 1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화재가 발생한 경우 임차인으로서는 화재 면책이 될 수 있는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했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건물주와 별도로 임차인도 화재보험에 가입해 건물주 보험사에 구상금 소송 등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예방책을 세우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실수 인한 화재도 실화자 책임
그렇다면 뜻하지 않게 발생한 화재로 옆 건물이 피해를 봤다면 법적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고의성이 없다면 면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법원은 실수로 인한 화재(실화)라도 원칙적으로 실화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김모씨는 2008년 자신이 운영하던 가구전시장 건물에서 합선.누전으로 화재가 발생, 건물 전체를 태우고 옆 건물까지 번졌다. 옆 건물과 화재보험계약을 한 LIG손해보험은 보험금을 옆 건물 주인에게 지급하고 김씨를 상대로 구상금 소송을 냈다. 1.2심은 "옆 건물 화재는 김씨의 직접적인 고의.과실로 인한 게 아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김씨 건물에 설치.보존상 하자가 있었고 그 하자와 인접 건물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김씨는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2009년 5월 개정된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실화책임법)의 취지에 따라 화재 가해자의 손해배상 범위를 넓게 본 것이다.
앞서 2007년 8월 헌법재판소는 옆 공장 화재로 피해를 본 공장주가 낸 헌법소원을 받아들여 경과실 실화자는 책임을 지지 않도록 규정한 '옛 실화책임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이후 법이 개정됐다. 개정법은 경미한 실화로 화재가 발생했더라도 이웃집까지 번졌다면 실화자에게 책임을 묻도록 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