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2015.12.16 18:22
수정 : 2015.12.16 18:22기사원문
어느 날 한밤 중, 정원용 삼지창에 찔린 채 처참히 죽은 웰링턴을, 자폐아 크리스토퍼가 처음으로 발견한다. 웰링턴은 이웃집 개다. 집과 학교만을 오가며 아빠, 선생님 외에 누구와의 교류도 없었던 크리스토퍼에게 웰링턴은 좋은 친구였다. 여느 아이들처럼 슬퍼하거나 눈물짓는 대신 그는 범인을 찾아나선다.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의 주인공 크리스토퍼가 본의 아니게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딛게 되는 순간이다.
범인을 잡겠다며 마을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크리스토퍼에게 돌아가는 시선은 따갑다. 아빠인 애드도 그만 두라며 호통을 친다. 수학 천재, 뭐든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크리스토퍼는 그러나 범인 찾기를 중단하지 않는다. 그러다 우연히 아빠가 자신의 수사를 반대하는 이유가 따로 있음을 알게 되고, 범인은 물론 얽히고 설켜있던 아픈 비밀들이 무더기로 베일을 벗는다.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에 괴로워하는 크리스토퍼의 내면은 무대 전체에 감각적으로 형상화된다. 지난 2013년 영국에서 초연돼 그해 올리비에 어워드 7관왕, 올해 토니상 5관왕을 휩쓴 이 작품은 독창적이고 화려한 무대 연출로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이번 국내 공연을 기획한 김수로 프로듀서는 "그 나라 국왕이 밀어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높은 금액" 때문에 대본만을 사온 것을 아쉬워했지만 덕분에 첨단기술과 아날로그가 결합된, 새로운 한국 버전이 탄생했다.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은 크리스토퍼의 눈부신 꿈, 엄마를 찾아 난생 처음 기차를 타게 된 두려움과 혼란스러운 감정이 조명과 영상으로 펼쳐질 때마다 객석은 탄성의 연속이다. 특히 국내 처음으로 시도된 인터렉티브 미디어의 활용이 인상적이다. 조명, 영상 등이 배우 몸에 부착된 센서를 인식해 구현된다. 가령 크리스토퍼가 '슬픔'을 상징하는 표정을 손으로 그리면 손짓을 따라 영상도 그려진다. 쓰레기통, 현금인출기, 냉장고, 소파 등 소품은 배우들이 몸으로 표현하는데, 참신한 움직임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화려하고 다소 복잡한 영상·조명 효과를 위해 무대는 최대한 비웠다. 이 작품 무대를 디자인한 정승호 무대감독은 "우주와 같은 크리스토퍼의 머리 속을 무대 전체에 표현했다"며 "구조물을 거의 활용하지 않고 영상과 조명으로 다이나믹하게 채우되 시각적이면서도 그 안에 정서를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윤나무, 려욱, 전성우가 크리스토퍼를 연기하고 애드 역으로 김영호와 심형탁이 연극 무대에 첫 도전한다. 크리스토퍼 역은 어려운 수학공식, 은하계의 생성원리를 줄줄 읊어대는 등 대사량이 엄청난데다가 자연스럽게 자폐아를 연기해야 하는 탓에 까다롭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10일 공연에서 윤나무는 순수한 소년의 얼굴을 하고선 능숙한 완급조절로 객석을 압도했다. 첫 연극 도전으로 기대감을 모았던 김영호는 무뚝뚝한 아빠의 잘 전형을 표현했지만 어색한 움직임과 잦은 대사 실수로 객석에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런저런 성공을 이룬 뒤 마지막에 크리스토퍼는 이렇게 묻는다. "그건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원작에서의 평서문은 한국 버전에서 의문문으로 바뀌었다. 대답은 관객의 몫이다. 공연은 내년 1월 31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광림아트센터 BBCH홀.
이다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