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지국장 명예훼손 사건을 보며

      2015.12.24 17:25   수정 : 2015.12.24 17:25기사원문

명예, 프라이버시와 언론, 표현의 자유라는 두 헌법적 가치는 모두 자유민주적 질서의 본질적 구성부분이다. 그런데 언론, 표현의 자유가 추구하는 관심사의 공론화와 명예, 프라이버시라는 사적 영역은 서로 대립·충돌하기 쉽다. 일본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에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한 의혹을 보도했다가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던 가토 다쓰야 지국장이 지난 17일 1심 법원에서 "허위사실 공표는 맞지만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검찰이 일본 언론인을 한국 법정에 세워 한·일 외교관계까지 갈등을 빚었는데, 지난달에는 한·일 간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역사논쟁이 또 법대 위에 올려졌다.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란 책에 기술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 부정이 허위사실 적시의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사건은 지난 19일 미국 뉴욕타임스 월드면 톱에서 다루어졌다. 미국은 1990년 대법원이 성조기 소각 금지를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지적할 만큼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나라인지라, 이 사건이 주목을 끈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미국 소설가나 예술가가 다른 나라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다 하여 영국에서 피소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런던 법정은 표현의 자유보다는 명예훼손에다 방점을 찍고 있는 터라 불법행위소송의 승소 가능성이 높고 위자료 액수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나 초상권 등을 별도의 인격권으로 소중히 다루기보다는 프라이버시 문제에다 포섭해 버리고, 오히려 빅데이터나 유명 연예인 초상의 퍼블리시티권 등 정보나 초상의 영리적 재산권적 측면이 부각된다. 이와 같이 표현의 자유와 명예 프라이버시 사이의 우월성에 관한 잣대나 심사기준에 있어 나라마다 온도 차이가 있으니 그로 인한 국가 간 갈등이 생겨난다.

20세기의 급격한 기술발전과 사회변화로 인해 언론이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 비밀을 침해할 가능성은 크게 높아졌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자연히 열린 사회와 사회적 관련성을 가질 수밖에 없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정보 제공을 요청한다. 언론은 이러한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항에 대한 수요를 진지하고 적절하게 충족시키고 실질적으로 여론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탄생된 제도이자 수단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한 공공정보에 관한 이익이 더 우월하다.

공적 이익의 우월성이 두드러진 영역이 바로 공직자나 정치인에 대한 비판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없으면 민주사회는 그 존립 기반을 잃게 되므로 다소 공격적이거나 충격적 혹은 불편한 보도나 표현이 나오더라도 다양성과 관용의 관점에서 이를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 특히 정치인은 의식적으로 자신을 노출시키므로, 그 언행과 관련해서는 언론이나 대중의 엄정한 잣대에 놓이게 마련이다. 공직자나 정치인의 직무활동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내밀한 사적 영역은 절대적으로 보호돼야 한다.
다만 대통령은 그 직위상 다른 공직자나 정치인에 비해서 프라이버시로 보호받는 영역이 훨씬 좁다. 그렇지만 공익상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명예나 사생활 비밀에 대한 침해도 사안의 중요성과 적정한 비례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세월호 침몰 당시의 대통령 행적이 지대한 공적 관심사라 이에 관한 보도의 비방 목적이 부인될 수 있겠지만, 언론은 항상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진지한 고민 속에서 표현에 있어 절도(節度)를 견지해야 한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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