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겨울이야기' 연출 로버트 알폴디 "방대한 내용 쉽게 각색 본질은 손대지 않았죠"
2016.01.06 17:40
수정 : 2016.01.06 17:40기사원문
올해 서거 400주년을 맞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줄줄이 공연을 예정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선 국립극단의 '겨울이야기'가 스타트를 끊는다.
'겨울이야기'는 '오셀로'의 핵심인 질투에서 비롯된 비극으로 시작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끝나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결정판이다. 아내가 자신의 친구와 불륜을 저질렀다고 생각한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의 오해가 가족을 파멸로 이끌지만 16년간 참회의 시간 뒤에 가족과 다시 만나 용서와 화해에 이르는 내용을 다룬다. 방대한 시공간 설정으로 국내에서는 어린이극이나 무용·음악 공연의 소재로 사용됐을 뿐 전막 공연으로 만나보기 힘들었다.
오는 10~24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서 전막 공연하는 '겨울이야기'는 그래서 도전이다. 이를 위해 혁신적인 연출로 유럽 연극의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로버트 알폴디(49·사진)가 헝가리에서 날아왔다. 그가 빚어낸 '겨울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개막을 앞두고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만난 알폴디 연출은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압축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고 했다. "지난 400년 동안 세상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어요. 셰익스피어가 지금 희곡을 쓴다면 이렇게 길지 않을 겁니다. 현시대에 맞게 압축시키되 이 작품의 본질과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알폴디는 그간 20편 가까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올렸고 한국에 오기 직전에도 부다페스트에서 '리어왕'을 연출했다. 원작을 각색하고 압축하는 작업을 선호하는 그가 '시(詩)적인' 셰익스피어 작품을 즐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배우들도 대사 하나하나 조심해서 뱉어야 하고 관객들도 집중해야 하니 거기서부터 에너지가 생겨요. 작품, 배우, 관객이 한 덩어리가 되는 거죠. 쉽지 않지만 흥분되는 작업이에요."
알폴디는 2008년 헝가리 국립극장 최연소 예술감독으로 임명되고 5년간 관습을 탈피한 연출로 관객의 호흥을 이끌었다. 헝가리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고전에 빗대 표현한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정부에는 "나라를 배신한 자"로 낙인찍혀 예술감독직을 내려놔야 했다. 그는 "헝가리 국립극장 앞 매표소에 아침 10시만 되면 10m가 넘는 줄이 늘어섰다"며 "나는 부끄러울 것도 없고 두발 뻗고 잠도 잘 잔다"며 웃었다. 헝가리 국립극장에 연간 14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비결에 대해선 "자유로운 표현을 독려했고 새로운 피를 수혈했더니 관객이 많이 몰렸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의 혁신적이면서도 미학적인 연출이 기대를 모은다. 상류층과 하류층의 공간을 거울과 어두운 지하로 대비한다든가 왕비가 기적적으로 부활하는 장면에서 물이 가득찬 2m의 수조가 깨지는 식이다.
다소 인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화해와 용서의 결말도 알폴디 특유의 미학과 암시로 개연성을 부여한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깜짝 놀랄 장면이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국 배우들과는 이번이 첫 만남이다. 두달 전부터 한국에 머물고 있는 그는 "언어 때문에 걱정하기도 했지만 사실 언어는 연극의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며 "한국어를 몰라도 배우들의 연기와 뜨거운 열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극찬했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