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여명에 24억 꿀꺽, 간 큰 전화 사기조직의 최후
2016.01.13 15:15
수정 : 2016.01.13 17:18기사원문
"안녕하세요, 서울 통합 멤버십센터입니다. 10년 전 가입한 서비스 미납금 300만원이 확인돼서 연락드립니다. 미납상태가 계속되면 통장에서 돈이 자동 결제되고 신용불량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160만원을 입금하면 완납한 걸로 처리해 드릴 테니 입금바랍니다"
지난해 1월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생활하던 이모씨(69)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서울 통합멤버십이라는 업체였다. 수화기 너머에선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0년 전 가입한 멤버십 서비스 연회비가 밀렸으니 당장 납부하라는 것이었다. 제때 납부하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도 들려왔다.
놀란 이씨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지만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보니 10년 전 이웃들과 문화생활을 지원한다는 멤버십에 가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연회비 2만원에 영화와 연극 등을 보여준다고 해 놓고는 사용하기가 까다로워 제대로 이용해보지도 못한 서비스였다. 이후 따로 연락이 오지 않아 자연히 해지가 된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10년이 지나 300만원이 미납됐다는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이후에도 멤버십 회사에서는 거듭 전화를 걸어왔다. 처음에는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으니 돈을 입금하라"더니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 "빚을 받으러 집에 찾아 가겠다"는 등 점차 강도가 심해졌다. 이씨는 결국 160만원을 입금했다. 그런데 웬걸, 이들의 협박은 끝이 아니었다. 확인해보니 추가 결제금액이 160만원 더 있다는 것. 결국 이씨는 160만원을 더 입금한 뒤에야 이들의 협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해 10월 서울 중구·강남·구로 등지에 콜센터를 차려놓고 멤버십 서비스 미납대금을 빙자해 전화사기 행각을 벌인 일당 41명을 검거, 조직 대표 고모씨(37)와 모집책 이모씨(54·여) 등 5명을 구속하고 3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사정이 어려워 휴업 중인 멤버십 서비스 업체로부터 회원정보를 불법으로 구매해 그 가운데 60대 이상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사기행각을 벌였다. 2014년 3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1년 넘게 이어진 이들의 범행에 확인된 피해자만 1657명에 이른다. 피해금액은 24억4000여만원이다.
이들은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대학생과 주부, 실직자 등 100여명을 고용했으며 이렇게 고용된 사람들을 여러 개의 점조직에 배치해 '전화 멘트 시나리오' '유형별 대응법' 등을 집중적으로 교육했다. 교육을 받은 이들 가운데 일부는 사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일을 그만두기도 했다. 그러나 사기가 성공할 때마다 20만원씩 인센티브를 받고 누구나 하는 정상적인 일이며 법적 문제가 생겨도 회사에서 처리해준다는 등의 말에 넘어가 동참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 일당은 일부 피해자가 형사 고소에 나서면 개별적으로 돈을 주고 고소를 취하토록 했다. 이들의 범행은 개인정보가 유출된 업체가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발목이 잡혔다. 사건을 담당한 송파경찰서 관계자는 "수사가 개시되자 연루자들이 모두 달아나 어려움을 겪었다"며 "숙소에서 생활하며 청와대 신문고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허위민원 및 진정을 제기하는 등 경찰수사를 방해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