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유통업 종사자 "ICT 첨병에서 폰팔이로 전락"

      2016.01.18 15:41   수정 : 2016.01.18 16:45기사원문
저는 2010년부터 휴대폰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휴대폰 유통업이란 말이 낯설다고요. 그렇다면 '폰팔이'라는 말은 어떠세요? 그렇습니다. 저는 휴대폰 판매점을 운영하며 고객들에게 휴대폰 단말을 팔고, 이동통신 서비스에 가입시켜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휴대폰 유통업에 종사한지 6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한때는 잘나가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동통신사들이 엄청난 리베이트(판매장려금)를 우리에게 주면서 가입자를 끌어모으던 때는 한달 수입이 1000만원을 훌쩍 넘었습니다.

휴대폰 유통점 수 변화
2012년 8월 2014년 12월
휴대폰 판매점 수 40908 20168
휴대폰 직영점 수 5665 8424
합계 46573 28592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이동통신3사>

■"이동통신 대중화의 첨병...스마트폰 대중화에도 한 몫"
그때는 지금처럼 지원금(보조금) 제도가 없었습니다. 소비자에게 단말을 판매하고 이동통신에 가입시킬때마다 리베이트가 책정됐습니다. 리베이트가 많을 때는 일부를 떼서 소비자들에게 보조금을 더 주고 우리 유통업자들은 남은 돈을 수익으로 가져갔습니다. 월급을 받는 직영점과 달리 우리는 휴대폰을 하나 팔때마다 수익이 생기는 구조입니다.

우리 선배들 중에는 1994년 애니콜 시절부터 휴대폰 유통업을 한 분들도 많습니다. PCS가 태동하던 1997년에는 테크노마트나 용산을 중심으로 휴대폰 유통업이 호황을 누렸답니다. 그때는 하루에 10대, 20대씩도 팔았다네요.

2004년에 번호이동 제도가 도입되면서 휴대폰 유통업이 크게 각광을 받았고 2010년, 스마트폰이 본격화되면서 이동통신 유통업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국내 이동통신 보급률을 높이고 스마트폰이라는 생소한 기기를 이용자들에게 상세히 소개해 스마트폰 대중화에도 한 몫을 했습니다. 선배들은 "우리가 정보통신기술(ICT) 첨병"이라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런 선배 밑에서 일을 배우다가 2010년에 창업에 나섰습니다. 권리금 3000만원에 보증금 3000만원, 인테리어 등에 2000만원을 투자했습니다. 8000만원 투자해서 한달에 1000만원도 넘게 벌어봤으니 휴대폰 유통업이 호황이긴 했었습니다. 휴대폰 유통점이 잘나갈때는 편의점보다 많은 4만여개의 휴대폰 유통점이 있었다고 하니까요.

■'보조금 대란'으로 '폰팔이'라는 비난 쏟아져
하지만 엄청난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매장 근처에만 휴대폰 판매점이 7개가 넘었습니다. 한 상권에 10개의 매장이 들어서다보니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손님 한명을 붙잡기 위해 지원금을 40만~50만원씩 주는 경우도 허다했죠. 단골들에게는 나의 인건비까지 포기해가며 영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물거품이 돼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소위 '보조금 대란'이라는 사건이 터지면서 우리 유통업자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습니다. 일부 유통업자들이 특정시간에 엄청난 보조금을 주면서 가입자를 모았고 그런 일들이 신문이나 방송에 연일 보도됐습니다. 한순간에 저희는 단골들도 속여서 '호갱'을 만드는 '폰팔이'가 돼버렸습니다.

한번 '폰팔이'라는 낙인이 찍히니 그 다음부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단골들도 저를 의심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정말 단골들이 온 그 시점에 가장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습니다. 하지만 이통사에서 내려오는 리베이트가 한시간만에 바뀌고 갑자기 20~30만원씩 더 높아지다보니 그 단골에게 비싸게 판 것처럼 된거죠.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시각각 바뀌는 리베이트를 미리 예측할 수도 없고, 리베이트를 늘렸다 줄였다하며 가입자만 무조건 모아오라고 요구한 이동통신 회사들은 멀쩡히 두고 우리 유통업자만 '폰팔이'로 내모는 것이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보조금 대란으로 우리같은 유통업자들 모두가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닙니다. 보조금 정책은 대부분 퇴근하고 나옵니다. 그리고 딱 2시간 동안만 진행되죠. 퇴근 시간 이후에 2시간만에 매장에 올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런 '대란'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온라인 유통망을 통해 대란을 주도한 극소수들 뿐입니다. 그 혜택을 받은 사람도 정말 극소수일 뿐이죠. 그렇게 조직적으로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정말 '일벌백계'해야 합니다.


■단통법에 기대했지만…
그래서 저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에 찬성하는 쪽이었습니다. 일부 유통업자들이 만든 흙탕물을 단통법이 정화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통법도 만병통치약은 아니더군요. 분명 지원금은 공시한 만큼만 줄 수 있는데 지금도 통신사들은 일부 매장에만 더 많은 리베이트를 줍니다. 그 매장에서는 공시된 지원금보다 더 많은 지원금을 불법적으로 주면서 영업을 합니다.

손님들은 공시 지원금보다 더 많은 지원금을 바라는데 우리는 그렇게 줄 수가 없습니다. 그랬다가 '폰파라치' 신고라도 당하면 바로 문을 닫아야 합니다.

문을 닫은 유통점도 속출했습니다. 4만개가 넘었던 유통점이 2014년말 기준으로 2만168개까지 거의 절반 정도로 줄었다고 합니다. 작은 규모 매장이 문을 닫은 그 틈새에 통신사 직영매장이 딱 들어옵니다. 직영점은 엄청난 직원 수, 다양한 서비스로 무장해 있어요.

직영점이 내 매장 앞에 들어오면 끝난겁니다. 매장 내놔야죠. 그런데 권리금, 보증금, 인테리어까지 8000만원을 넘게 투자했는데 지금은 매장을 내놔도 시설비 1000만원을 챙기는 것도 어렵더라고요. 매일밤 매장을 정리하려고 다짐하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습니다.

제 친구들도 여럿 휴대폰 유통업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알아봤으니까요.

■"ICT 전문 컨설턴트로 거듭나야"
하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을겁니다. 휴대폰을 싸게 판매하는 것이 경쟁력인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살기 힘들 것 같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기도 힘듭니다. '폰팔이'라는 이미지는 결국 저와 같이 유통업에 종사하는 일부 사람들이 저지른 불법 행위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우리는 이제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바라봅니다. 언제까지 '폰팔이' 소리만 들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미 휴대폰도 팔아봤고 휴대폰 보험도 팔아봤습니다. 휴대폰 요금과 연계한 카드상품도 팔아봤죠. 휴대폰만 판게 아닙니다. 유선인터넷, 인터넷TV(IPTV)는 물론 홈 와이파이(WiFi), 홈 폐쇄회로TV(CCTV)도 판매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다양한 IoT 제품들이 빠르게 보급되면 누군가는 전문적으로 고객들에게 IoT 제품을 소개하고 네트워크까지 한번에 구축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ICT 융합상품 컨설턴트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폰팔이'가 아니라 ICT융합상품 컨설턴트로서 고객과 가장 가까이에서 최신 융합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려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휴대폰 유통업자가 많다고 줄이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긍정적인 방향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해줬으면 좋겠습니다.

jjoony@fnnews.com 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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