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노을이 붓질한 청풍호.. 황금빛에 눈이 부셨다

      2016.01.21 16:37   수정 : 2016.01.22 09:20기사원문
【 제천(충북)=이정호 선임기자】충청북도 제천은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이다. 청풍명월은 글자 그대로 맑은 바람 밝은 달이라는 뜻으로 제천 지역의 뛰어난 자연 경관을 이 한마디로 압축한다. 제천은 또 산과 물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는 곳마다 산의 기세가 절경을 이루며 잔잔한 못과 호수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제천의 제1경으로 꼽히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 '의림지'가 있고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청풍호'가 있다.
또한 호수의 풍광과 함께 금수산 자락의 산세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자드락길'이 기다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6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한 제천으로 힐링 여행을 떠나보자.



■가장 오래된 저수지 '의림지'

삼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제천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 꼽힌다.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둘레는 1.8㎞이고 수심은 8m 정도다. 축조된 명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도 유일하게 수리시설 기능을 해내고 있다. 구전으로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5) 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에 서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 전해지고 있다.

밤 사이 눈이 내린 날 의림지 입구에 들어서니 200~300년 수령을 자랑하는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반갑게 맞는다. 소나무 가지와 솔잎에는 눈송이가 덮여져 있다. 상쾌한 솔내음이 마음과 머리를 맑게 해 준다. 얼음이 언 저수지 위에도 흰 눈이 쌓여 마치 은쟁반 같다. 저수지를 따라 제방길과 나무데크 등이 설치돼 한바퀴 산책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설경이 좋은 날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관광객과 시민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순조 7년(1807년)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 건립된 '경호루' 등 정자가 한데 어우러져 의림지의 운치를 더해준다. 의림지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명승지이면서도 시민들이 소풍가듯 쉽게 찾아가는 유원지 역할도 하고 있다. 특히 의림지의 야경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의림지에 얽힌 전설로 거북바위를 돌려놓아 부자집이 몰락했다는 이야기와 탁발승을 홀대해 부자집이 몰락해 그 자리에 저수지가 생겨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그리고 의림지에 있는 큰 이무기가 가끔 나와서 사람이나 가축을 해치는 일이 있었는데 어씨 오형제가 이무기를 잡은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게 됐다고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내륙의 바다 '청풍호'
청풍호는 1985년 준공된 충주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호수다. 청풍호는 내륙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담수량이 많다. 면적 67.5㎢에 평균 수심 97.5m, 길이 464m이며, 저수량은 27억5000t이다. 이중 제천시의 담수 면적은 발간 서적마다 수치상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48㎢로 호수 전체 면적의 약 71%를 차지하고 있다. 청풍호가 자리한 곳에 흐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은 파수(巴水)였다. 청풍 사람들은 이 파수를 청풍강이라 불렀다. 따라서 이곳에 조성된 호수를 자연스럽게 청풍호라 불렀을 것으로 판단된다. 문헌상에도 청풍호라는 지명은 충주댐 수몰 이전부터 나타나고 있다.

청풍호의 물빛은 시시각각으로 달라진다. 구름 속에 있던 해가 삐죽이 머리를 내밀면 호수면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노을이 지면 황금빛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호수 위로 유람선이 지나가면서 하얀 물보라 궤적을 그린다. 청풍나루에는 충주나루와 장회나루를 다니는 대형 유람선이 있다. 유람선을 타고 청풍호의 푸른 물결과 바람에 몸을 실으면 옥순봉과 구담봉의 멋들어진 석벽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청풍호 주변에는 풍광을 자랑하는 명산들이 산재해 있다. 물맛이 좋기로 유명한 비봉산과 청풍면의 진산인 인지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한강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금수산이 있다. 이외에도 동산, 대덕산, 부산, 관봉 등이 있다. 청풍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 포인트로는 청풍호 활공장, 정방사, 옥순대교 전망대 등이 꼽힌다.

■청풍호 '자드락길'
청풍호의 풍광과 금수산의 수려함을 함께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청풍호 자드락길은 청풍면 교리 만남의광장에서 시작해 수산면 상천리, 옥순대교, 괴곡리, 다불리, 지곡리를 거쳐 옥순대교로 이어지는 총 58㎞의 길이다. 자드락길이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일컫는 말이다. 청풍호 주변 산간마을을 이어주는 길이라고 해서 자드락길의 앞에 청풍호란 수식어가 붙었다. 쉬지 않고 걷는다면 22시간30분이 소요되는 긴 길이며 총 7개 코스가 있다.

그중 1코스인 작은 동산길은 원래 청풍면 만남의광장에서 시작해 청풍리조트, 모래고개, 작은동산, 중고개, 학현교를 지나 능강교에 이르는 19.7㎞의 길이다. 4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현재 만남의광장과 호숫가 길은 공사중이어서 통행할 수 없다. 그래서 작은 동산 입구 교리 주차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른쪽 족구장이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동산 등산로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부터는 흙과 풀, 나무 냄새가 물씬 묻어나는 산길이다. 5분쯤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 교리마을과 연결된 임도가 나타나는데, 작은 동산길은 계곡을 따라 위쪽으로 이어진다. 원시림 숲을 40분쯤 걸으면 작은 언덕에 도달한다. 여기가 모래고개다. 원래 이름은 큰재. 큰재는 동산(896m)과 작은동산(545m)을 잇는다. 등산객들 대부분이 수려한 암릉을 타고 동산에 오른 뒤 모래고개를 지나 작은동산으로 간다. 때문에 휴일마다 모래고개에는 지친 다리를 쉬어가는 등산객들로 붐빈다. 여기서 작은동산까지는 0.64㎞, 가파르기 때문에 느린 걸음으로 20분쯤 걸린다. 작은동산은 오르는데 힘이 들지만 청풍호의 진풍경을 볼 수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


정상에서 교리 방향 능선을 타면 전망대를 만나게 되는데 가슴이 뻥 뚫리는 장관이 펼쳐진다. 첩첩산중에 펼쳐진 거대한 호수면이 햇빛에 반사돼 반짝인다.
제천이 산과 물의 본향임을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jungle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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