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울산 석유화학공단·온산공단, 저유가·실적부진·파업 삼중고...
2016.01.28 16:41
수정 : 2016.01.28 16:41기사원문
요란한 기계 소음도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고 정적만 흘렀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24시간 공장이 풀로 돌아갈 정도로 생산물량이 넘쳐났으나 유가하락 여파로 가동률이 크게 떨어지자 아예 문을 닫았다. 앞서 지난해 말에는 현대중공업 1차 협력업체 대표 A씨(63)가 회사의 경영난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가 남긴 유서에는 자금 압박에 따른 부분 체불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 울산=김기열 기자】 병신년 새해를 맞은 울산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유가하락의 여파로 3대 주력산업 가운데 자동차를 제외한 석유화학산업과 해양플랜트산업이 불황의 긴 터널을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1·2차 협력업체나 규모가 작은 중소업체들은 자금난과 일감 부족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유가하락에 실적부진 겹쳐
울산지역 석유화학업체와 해양플랜트 관련 업체들이 입주해 있는 울산석유화학공단과 온산공단은 24시간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멈추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지속된 유가하락 여파로 원유를 수입해 이를 제품화해서 수출하는 석유화학산업의 실적이 크게 떨어져 가동을 중단하거나 줄이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석유제품 수출량은 지난해 1∼11월 2880만t으로 2014년 같은 기간보다 9.5% 감소했지만 수출액을 기준으로는 145억달러로 2014년보다 47.5%나 급감했다. 석유화학제품 역시 지난해 수출량은 683만t으로 2014년보다 22.4%, 수출액은 67억달러로 43.4% 각각 떨어져 유가하락 직격탄을 가장 심하게 맞았다.
울산 석유화학공단의 중견 석유화학업체인 모 케미컬업체는 지난해 매출 11%, 영업이익이 23% 감소한 가운데서도 노조가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간 상태다. 회사 측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들의 비상근무와 대체 인력을 투입해 겨우 공장을 가동하고 있지만 줄어든 물량을 맞추기에도 힘이 부치는 실정이다.
나일론과 플라스틱 재료를 생산하는 한 업체는 2012년 이후 중국업체의 공장 신.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에다 글로벌 경기 부진까지 겹치며 제품 가격이 70% 가까이 하락하면서 3년 넘게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일부 공장의 가동을 중단해 경영손실을 최소화하고 공정 개선과 비용 축소에 전력을 투구하는 등 생산원가 절감을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올해는 국내 시장과 동남아 등 새로운 시장 물량을 확보해 생산량을 회복하려고 하고 있으나 3년여의 부진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며 "단일 제품 생산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통한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신규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황의 여파로 석유화학공단의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지 않을 때가 점점 늘어나 가동률이 60%에 머물고 있으며 임금삭감, 직원감축 문제로 노사 갈등의 기운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해양플랜트 수주 사라져
온산공단의 한 플랜트업체 생산공장과 공장 마당에는 발주가 취소되거나 연기돼 제작이 중단된 각종 플랜트 설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해양·육상플랜트 설비를 한 건도 수주하지 못해 하루하루 근근이 버틸 정도로 어렵다"며 "다른 업체들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아 파산 위기에 내몰린 기업들이 부지기수"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올해에도 저유가 여파로 조선해양산업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세계 1위 조선업체의 위용을 자랑하는 현대중공업은 2013년 말부터 최근까지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누적 적자액만 4조6000억원대에 이른다. 현대중공업은 위기극복을 위해 초긴축 경영에 들어갔지만 계속되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선가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경영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지속적인 유가하락에 따른 조선경기 불황을 견디지 못한 현대중공업은 결국 오는 4월부터 온산공단 내 해양2공장(온산공장)의 작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해양2공장은 20만㎡ 규모로 본사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등 300여명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유식 생산저장 하역설비(FPSO)와 액화천연가스(LNG)플랜트를 잇따라 제작했지만 저유가가 계속되면서 해양플랜트 발주가 끊겨 추후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다.
회사 관계자는 "해양2공장의 가동률이 낮기 때문에 1공장에 물량을 모아 처리할 계획"이라며 "해양2공장 60여명의 본사직원은 해양1공장에서 일하게 되며 나머지 협력업체 직원은 3월 말로 계약이 끝나게 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에 플랜트를 납품하는 인근 조선기자재 업체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으로 몰리고 있다.
■산업재편, 차세대 주력산업 개발
울산의 주력산업인 석유화학·조선산업은 유가하락과 세계적 공급과잉으로 산업재편이 시급하다.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완화해 지속 발전 가능한 산업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서비스산업의 발전과 함께 3차원(3D) 프린팅, 수소 기반산업, 2차 전지산업, 게놈 프로젝트 등 기존 주력산업을 대체할 차세대 주력산업을 키워나가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게 지역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또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급한 것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업인들이 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인수합병이나 매각 같은 사업재편 절차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 혜택과 자금지원을 제공하는 경제활성화법안(기업활력제고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개혁법)의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무역협회 심준석 울산본부장은 "올해도 대외여건이 어렵지만 울산수출은 소폭 증가세로 반전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정부와 국회가 각종 규제를 해소해 기업들이 자금과 규제에 대한 부담 없이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kky060@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