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이 기분나빠 사무장 불러와!".. 승무원 무릎꿇고...
2016.02.22 17:33
수정 : 2016.02.22 22:15기사원문
#. 저는 입사 3년차의 항공기 객실승무원입니다. 흔히 스튜어디스라고 알고 계시죠. 일을 시작한 지 어느 정도 됐지만 비행기를 탈 때마다 스트레스와 긴장이 몰려옵니다. 오늘은 큰일 없이 비행을 마치고 싶다고 수없이 기도합니다. 물론 비행 중에 별 탈이 없었다 해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고객들이 추후에도 항공사 홈페이지를 통해 불만을 제기하기 때문이죠. 탑승한 항공편과 날짜를 정확히 기재할 뿐 아니라 필요할 경우 특정 승무원의 이름까지 적어 불만을 쏟아냅니다. 고객마다 요구사항이 다르고 불만을 느끼는 기준이 주관적이어서 저는 1년 내내 긴장 상태입니다. 일단 불만이 접수되면 상급자로부터 질책은 피할 수 없습니다.
■"서비스 제공자이지 노예가 아닙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모든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서비스의 친절도나 적절함을 평가하는 기준은 고객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한 고객이 온라인을 통해 기내 탑승 직후 주는 따뜻한 물수건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불쾌했다는 의견을 남기셨습니다. 물수건을 드리기 전에는 분명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고, 당시 기내에 있던 다른 고객들로부터 비슷한 클레임이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기내에서 아무 일이 없더라도 클레임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사내 인트라넷을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합니다.
온라인을 통한 불만 제기는 어쩌면 나은 축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입사 1년이 채 되기도 전 기내에서 한 고객에게 무릎을 꿇기도 했습니다. 승무원을 대상으로 한 소위 '갑질'은 유명인이나 기업 임원이 관여된 경우에만 언론에 보도되기 때문에 드문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납니다.
당시 비즈니스석에 탑승한 60대 후반의 남성 고객은 제가 고객이 요청한 펜을 공손하게 건네주지 않았다며 사무장까지 호출했습니다. 펜을 전달할 때 표정이 좋지 않아 기분이 나빴다며 제 이름 석자를 부르며 '사무장을 불러와!'라고 말하더군요. 당시 함께 탑승했던 사무장 선배는 "여기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네가 사과드리고 마무리하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복도석에 앉아있던 해당 고객 자리 옆에서 스커트가 찢어질라 조심스럽게 무릎을 땅에 대고 쪼그려 앉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태는 그렇게 마무리됐고 저는 그날 집에 와서 많이 울었습니다.
일반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도 늘 상사의 비위를 맞춰주며 사회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상사는 비교적 고정돼 있습니다. 하다보면 요령도 생기겠죠. 그러나 저는 직장에 나갈 때마다 매번 새로운 상사 수백명을 만나는 기분이 듭니다.
한국직업개발능력원에 따르면 감정노동을 많이 하는 직업 순위에 항공기 객실승무원이 1위를 차지했다고도 합니다.
■아름다운 미소 뒤의 그림자…
예쁜 블라우스와 스커트에 단정한 머리, 늘 아름다운 미소로 기내에 있는 것 같지만 고객이 못 보는 사이 저희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화장실 청소입니다. 락스를 써서 하는 물청소까지는 아니지만 장시간 비행일 경우 화장실 청소가 꽤나 버겁기도 합니다.
제일 난감한 경우가 고객이 세면대에 구토했을 경우입니다. 토사물로 세면대가 막혀버리면 남은 비행 시간 다른 고객들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보통 객실승무원이 고무장갑을 끼고 직접 토사물을 건져냅니다. 승무원 생활을 하다보면 건강 유지도 어렵습니다. 남보다 오랜 시간 비행을 하다 보니 몸에 통증이 자주 찾아옵니다. 선천적으로 무릎이 안 좋은 저는 사실 비행기만 타면 무릎이 시리곤 합니다. 선배 승무원들 역시 원래 있던 지병이 하늘에 오래 있다 보니 악화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합니다.
승무원들은 스케줄이 꽤나 유동적인 편입니다. 저는 비교적 큰 항공사에 재직 중이지만 비행 일정이 출국 이틀 전에 나오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이러다보니 일반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저는 평일과 주말 관계없이 일하니까요. 남들은 평일에 쉬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사실 평일에 쉬는 사람이 잘 없다보니 친구들 만나기도 힘드네요.
■"연봉 많다, 시집 잘 가려고"…편견에 힘들어
사실 직장생활이 편한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직장생활 자체도 힘들지만 저를 힘들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사람들의 시선입니다.
저는 승무원 관련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오면 꼭 클릭하는 편인데요, 요새는 댓글을 보기가 무섭습니다. 승무원에 대한 가장 흔한 악플은 '너네 하늘에서 밥주는 일밖에 안하는데 왜 돈 많이 받느냐' '너네가 뭐하는데 연봉이 높은지 모르겠다' '너네 무식한데 돈 많이 받으면 그냥 불평하지 말고 일해라' 등입니다.
현실에서도 대놓고 제 직업을 폄하하는 사람이 자주 있습니다. 승무원들이 20~30대 젊은 여성들이 많다보니 사람들은 으레 "시집 잘 가려고 승무원 하는것 아니냐"는 말도 서슴없이 합니다.
해외에 자주 나가다보니 "공짜로 여행 다니고 쉽게 돈 버는 집단"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시집 잘 가려고' 혹은 '공짜로 여행 다니려고' 제가 앞서 말한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는 일에 비해 연봉이 높다고 많이들 생각하시지만 항공 객실승무원의 대우와 복지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연봉만 하더라도 저비용항공사의 경우 절대 '높다' 할 수 없습니다.
저비용항공사 비정규직 스튜어디스로 근무하던 지인 A씨는 비정규직 과정 중 비행을 나가려던 당일 새벽 사측으로부터 별다른 이유를 듣지 못하고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재직 시 A씨의 생명수당을 포함한 비행수당은 비행당 2000원이었습니다.
tinap@fnnews.com 박나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