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외전' 독점과 '귀향'의 흥행 기적

      2016.02.25 16:58   수정 : 2016.02.25 17:00기사원문

"이번 주 안으로 '동주'랑 '귀향' 꼭 보는 게 내 목표야. 왜 그런지 말해줄까? 나 일주일에 영화 한 편 이상 봐. 꽤 많은 편이지. 월급쟁이 주머니 사정 뻔한데, 영화 정도면 문화생활로 딱 좋잖아. 근데 영화관이 내 문화생활을 안 도와줘. 개봉한 영화는 많은 것 같은데 정작 영화관에 가면 볼 영화가 없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거야. 든든한 배급사 낀 대형 영화들에 밀려서지.

지난 설 연휴 때가 제일 황당했어. CGV에 갔는데 온통 '검사외전'인거야. 이게 스크린 독과점이구나, 몸소 느끼고 왔지. 그런데 '검사외전'이 CGV에 도배가 된 걸 보면 스크린 독식 문제가 꼭 배급사와 상영관의 유착관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더라. CGV랑 CJ E&M, 롯데시네마랑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그룹 계열사잖아. 그런데도 CGV에서 CJ E&M이 배급한 '쿵푸팬터3'를 줄이고 '검사외전'을 늘렸다며? 어느 상영관에서 '쿵푸팬더3' 예매한 관객한테 예약 취소 요청하고 '검사외전' 보라고 권했다는 기사 보고 깜짝 놀랐어. 영화관 매출이 급격히 떨어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거라더라. 잘 되는 영화에 몰아준 거지. 그래도 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70%를 차지하는 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아무튼 난 결국 '검사외전' 봤어. 볼 게 없는데 어떡해. '검사외전'은 그냥 웃고 즐기기 좋은 영화더라. 3일 전에 누적관객 900만명 넘었다던데 이러다가 1000만명도 넘겠어. 솔직히 그만한 영화는 아닌 것 같은데…."

영화를 좋아하는 30대 직장인 세 명과 최근 스크린 독점에 대해 나눈 대화를 버무려 한 사람의 말로 재구성해봤다. 관객이 아무리 보고자 해도 대기업 자본과 권력이 버티고 있을 때 '수요의 힘'이 무색해지는 현실이다. 극장이 특정 영화의 상영횟수를 많이 보장해 주면 관객은 증가하게 마련이지만 관객의 선택권이 보장됐다고 볼 수는 없다. '흙수저' 영화들은 나가 떨어지고 한국영화의 다양성이 사라져간다.

'검사외전'을 통해 해묵은 과제에 다시 불이 붙어 차라리 다행이다.
희망의 조짐이 보인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18일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 입법청원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스크린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일본군 위안부 소재의 영화 '귀향'도 개봉 당일 박스오피스 1위와 함께 관객들의 온라인 청원이 이어지면서 대형 극장들의 철벽이 열렸다.
관객들은 애를 쓰고 있다. 업계와 입법자들도 부디 동참해주시길.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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