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거긴 안가요.. 신고할 테면 하세요"
2016.03.06 17:56
수정 : 2016.03.06 21:49기사원문
하지만 이들의 직장은 대부분 서울. 실제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출퇴근하는 '출퇴근족'은 약 9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주거비 부담 탓에 어쩔 수 없이 서울을 떠났지만 이들이 감내해야 할 불편함은 적지 않다. 특히 교통, 그중 택시의 '시·도 간 승차거부'는 심각한 수준이다. 심야시간 지하철은 운행하지 않고, 버스도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택시를 이용하려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상 택시를 타고 귀가하기란 쉽지 않다. 탈경 시대를 맞아 출퇴근족의 애환을 취재해봤다. <편집자주>
#. 어젯밤 12시쯤 서울 시흥동 사거리에서 경기 광명시 하안동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습니다. 제가 "광명시 하안동이요"라고 하자마자 택시기사는 "거기는 못 갑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 기사님 말씀이 "전 서울 택시라 경기도에 갈 의무가 없고, 길도 모른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길 모르시면,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라고 했지만 택시는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어요. 결국 다른 택시를 타고 광명시로 왔어요, 우스운 건 광명시까지 데려다준 택시도 역시 서울 택시였어요. 시·도 간 택시 승차거부는 '엿장수 마음'이더라고요. 이래도 되나요?
국내 대형 포털업체의 '묻고 답하기' 서비스에 올라온 글이다. 단순히 한 개인의 사례인지 확인하기 위해 야심한 시각에 택시를 잡아 경기도 도시까지 가보기로 했다. 2월 24일 11시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최근 아파트 단지가 대거 조성된 경기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 일대로 가는 택시 잡기를 시도했다. 한국거래소와 여의도 우체국 사이 골목길에 일렬로 늘어선 택시가 5대나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승차를 거부했다. 우선 자리에 앉으면 다른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아 목적지를 말하지 않고 좌석에 앉은 다음 말했지만, 택시기사는 단호했다.
"왜 가지 않느냐"는 볼멘소리에 이 기사는 "이 택시는 서울 택시라서 경기도는 안 갑니다. 손님이 승차거부로 신고해도 상관없으니 신고할 테면 하세요"라고 쏘아붙였다.
"경기도면 거리도 꽤 될 텐데 기사님에게도 이득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이 피크타임에 경기도를 가는 건 바보짓"이라고 말했다. "이 시간에 경기도에서 서울로 가는 손님을 못 태우면 빈 차로 서울로 나와야 하는데 그게 더 손해"라는 것이다. 25일 밤 12시에는 서울 양평동 앞에서 택시 잡기를 시도해 봤지만 매한가지였다. "네 맘대로 해봐라"는 기사도 수명이었다.
이들 택시기사가 이처럼 배짱을 부릴 수 있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승차거부는 여객의 승차를 거부하거나 여객을 중도에서 내리게 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정부와 각 자치단체는 택시 이용 서비스 개선을 위해 '택시 승차거부 3진아웃'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통해 지난해 1월 29일부터 2년 안에 3차례 승차거부 사례가 적발될 경우 택시기사 자격을 취소하고 있다. 최초 승차거부가 적발되면 과태료 20만원, 2번째는 40만원에 자격정지 30일, 3번째엔 60만원에 택시기사 자격 취소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승차거부로 간주하지 않는다. 국토부 택시 승차거부 단속 매뉴얼 중 '주요 승차거부 미간주 사유'를 보면 '해당 택시가 소속된 사업구역 밖으로의 운행을 거부하는 경우'가 제일 첫 줄에 올라와 있다. 이 탓에 예외적 사례에서 승차거부가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과 승차거부 사유로 목적지가 시외지역(45.9%)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특히 지하철이나 버스가 끊긴 심야시간대인 밤 10시~오전 2시(47.9%)와 0시~오전 2시(26.0%)가 가장 빈번했다. 결국 승차거부 3진아웃 제도가 무용지물이 됐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택시를 잡을 수 있다'는 스마트폰 콜택시 서비스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호출택시는 수십대였지만 수십분이 지나도 응답하는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제법 풀린 2월이지만 30분 넘도록 도로 한복판에서 택시를 잡으려니 칼바람이 코트 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짜증이 났다.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과 인접한 구파발로 목적지를 바꾸자 즉각 응답이 왔다. 구파발로 가는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에게 "왜 삼송동까지 가지 않느냐"고 따졌다. 택시기사는 "이 시간에는 짧은 거리 손님을 더 태우는 게 득"이라고 말했다.
구파발에서 내려 수차례의 거절 끝에 삼송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마찬가지로 서울 택시였다. 이 택시기사는 "집이 은평구 불광동이라 손님을 모셔다 드리고 귀가할 생각에 태웠다"고 생색을 냈다. 그러고는 "삼송이 아니라 일산까지 가자고 했다면 손님을 태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서울 인구가 점차 감소하고 있어 인근 경기도 소도시로 가자고 요구하는 손님이 많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만약 탑승 시점부터 시외요금을 적용한다고 하면 군소리 없이 목적지로 향하는 기사들이 제법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요금' 때문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경기도 인근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 인구는 곧 1000만명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당장 지난해에만 서울 인구 13만7000명이 서울을 떠났다. 이는 18년 만에 최고치다. 값비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경기도로 이주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다. 실제 근무지 기준 취업자가 더 적은 지역 상위 10곳 중 9곳은 서울 위성도시로 고양(12만3000명), 수원(10만9000명), 남양주(9만7000명), 부천(8만7000명), 용인(8만명) 등 총 90만명에 달한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