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자 퇴출 기준?

      2016.03.21 17:54   수정 : 2016.03.21 17:54기사원문

어느 공기업의 A사장이 퇴임을 한 달여 앞두고 각 부서장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부서장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우리 조직이 개선해야 할 방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해달라고 말했다. 물러나는 A사장이 마지막으로 회사 발전을 위해 부하들의 고언을 듣기 위한 자리라고 판단한 한 B부서장은 작심하고 조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B부서장은 드디어 A사장이 전향적 자세로 조직을 개편하리라고 믿었지만, 돌아온 것은 정반대였다. B부서장은 A사장 퇴임을 앞둔 인사에서 '물'을 먹었고, 보직까지 빼앗겼다.
결국 B부서장은 지난해 보직도 없이 퇴직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공기업.준정부기관 역량 및 성과 향상 지원 권고안'을 의결했다는 소식에 한 지인이 자신의 삼촌이 겪은 일이라며 해준 이야기다. '근무성적이 나쁜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훈련을 하고, 그래도 성과가 좋지 않으면 해고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한다는 정부의 취지에 반대하는 이는 없다. 태업을 일삼으며 고액 연봉만 챙겨오던 이들을 공정하게 평가해서 '일하는 조직'으로 바꾸겠다는 취지가 나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대다수 공기업이 그동안 방만한 경영으로 '신의 직장'으로 불렸던 것을 감안하면 정부의 이런 결정이 너무 늦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정부가 마련한 '공기업·준정부기관 역량 및 성과 향상 지원 권고안'을 보면 각 공공기관은 개인별 업무성과 평가와 다면평가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또 저성과자 퇴출에 앞서 역량·성과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이나 배치전환의 기회를 줘 단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저성과자로 1회 선정되면 해당 직무를 수행하면서 역량개발 교육 프로그램을 받게 하고, 2회 선정되면 배치전환 조치를 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한 뒤 3회 선정 때는 직위를 해제하고 교육 프로그램만 받도록 하는 식이다.

저성과자로 낙인 찍기 전 본인의 의지를 한번 확인해보는 식이다. 이 때문에 작심하고 태업을 하는 이들은 국물도 없이 퇴출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도 우려스러운 부분은 있다.
저 A사장과 같은 이들 때문이다. 저성과자를 선정하는 이들은 아랫사람이 아닌 윗사람일 수밖에 없다.
저성과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객관적이고 공정하지 못할 경우에는 B부서장과 같은 피해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연장도 쓰기 나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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