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낮춰도 돈맥경화 여전.. 韓銀법 바꿔 정책금융 지원

      2016.04.07 22:34   수정 : 2016.04.07 22:34기사원문

"'재정사정'이 나은가, '통화사정'이 나은가."

지난해 8월 말.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공식 회동한 자리에서 그날의 밥값 계산을 놓고 농을 던졌다. 언중유골. 이 말엔 뼈가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재정을 쏟아부은 결과 국가부채 한도는 차오르는데, 통화정책은 여전히 여력이 있어 보인다는 말이었다. 다른 말로는 한국은행이 과감히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당시 시장은 한은의 역할 강화라는 게 단순히 '금리인하'를 주문하는 소리로만 들었다.
기재부의 또 다른 한 수를 읽지 못한 것이다.

■이미 최경환 때 양적완화 큰 그림 그려져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이번 4.13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한국판 양적완화' 그 밑그림은 이미 이때 시작됐다는 게 7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 전언이다.

최경환 부총리 재임 2년차 기획재정부 등 경제팀 내부에선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금리를 3~4차례나 내려 기준금리가 1.5%대까지 떨어졌는데도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은 날로 심해졌다. 최 전 부총리는 당시 돈맥경화를 해소할 방안으로 미시적 수단 강구를 적극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한은이 중소기업 대상 초저금리 대출 프로그램인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20조원에서 25조원으로 확대한 것이나 가계대출 관리를 위한 주택금융공사 출자, 산업은행에 회사채 지원을 위한 자금대출(지난해 8월) 등이다. 다만, 그것이 '양적완화'라는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강봉균식 양적완화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새누리당으로 복귀한 최경환 전 부총리(대구·경북 선대위원장)가 지난 5일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저작권'을 놓고, 자신도 검토했다고 주장하는 게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최 부총리는 강봉균 선대위원장이 총선 공약으로 한은이 산업은행 채권과 시중은행 주택저당증권(MBS)을 인수하는 방식의 양적완화를 내건 데 대해 "경제부총리 때 진지하게 고민했던 방안이다.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봉균 위원장이 내건 '양적완화'라는 단어도 본질은 '한은의 미시적 역할 강화'다. 바로 이 부분에서 최경환 전 부총리나 강봉균 위원장 간 접점이 생긴다. 강 위원장은 이날도 "중앙은행이 이제는 인플레만 막는 역할을 하는 시대가 아니라, 다른 선진국처럼 경제가 가라앉으면 그것을 일으키고 금융시장에 돈이 막힌 곳이 있으면 뚫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위원장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과정의 산증인이자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사령관이었으며, 재정개혁을 강조하는 건전재정론자다. 더 이상 재정을 축내지 않으면서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가계부채 문제를 관리하고, 시중 유동성을 공급해 경기회복세를 지원하는 '1타 4피'의 방안을 충분히 그려낼 만한 인물이라는 얘기다.

■한은 침묵… "유일호 부총리 긍정"

기획재정부는 현재로선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자칫 선거개입이라는 멍에를 쓸 수 있는 데다 다시 한 번 한은의 팔을 비틀어 통화정책에 개입했다는 부담을 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일호 부총리의 공개 발언을 미루어 짐작건대, 양적완화 추진의 근거가 되는 한은법 개정에 대해 당정 간 상당 수준의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파악된다. 전날 유 부총리는 "통화정책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하는 것"이라면서도 "한은과 기재부 간 조율이 중요하다" "거시경제의 두 축 간 상황인식이 공유되지 않고 따로 가면 안된다"고 언급했다.

강봉균 위원장은 나아가 이날 "정부에서도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형 양적완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며 "(20대 국회에서) 바로 추진되는 것"이라고 강조해 사실상 한은법 개정 추진에 쐐기를 박았다. 결국 '최경환-강봉균-유일호'로 한국은행의 역할 강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새누리당은 이날 '한국판 양적완화'의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20대 국회 개원 100일 이내에 한은이 산은과 한국주택금융공사 채권.증권을 살 수 있도록 한국은행법(한은법)을 개정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사자인 한은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또 다른 당사자인 산업은행도 침묵하고 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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