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만 달라지면 되나

      2016.04.26 16:56   수정 : 2016.04.26 16:56기사원문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를 가졌다. 2013년 4월 24일 이후 3년 만이다. 민의를 받들겠다고 다짐한 박 대통령의 첫 번째 행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행사였다. 간담회에서는 좋은 얘기가 많이 나왔다. 국정운영을 위한 고언도 가감 없이 나왔다.
하지만 무슨 말이 오갔는지보다는 만남 자체가 중요하다. '소통 부재'는 박 대통령 비판의 단골 메뉴였다. 보고서와 측근 몇 명에 의존한다, 장관이나 수석비서관조차 직접 대면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등이었다. 이런 국정운영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설사 같은 결과라 해도 마찬가지다. 실상이 어떻든 국민들에게 보여지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박 대통령이 언론과 대화를 나눈 것은 그래서 의미를 갖는다. 여야 의원들도 자주 만나고, 국민들과의 대화도 수시로 갖고, 식사도 사람들과 어울려 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쇼라 해도 좋다. 여소야대 정국 운영을 위해서는 그 외에 다른 묘수가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통령만 달라지면 우리 정치가 갑자기 새롭게 될지 의구심이 든다. 마침 어제 또 하나의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새누리당 당선자 대회가 그것이다. 여당의 총선 참패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결과이다. 당연히 온갖 쓴소리가 봇물을 이루었다. 선거 이후 대통령과 청와대가 달라져야 한다는 언론의 주문과 결을 같이한다. '계파 해체 선언' 등의 주문이 쏟아졌다. 의문은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온다. 국회의원들이 아직도 자신들의 위치와 역할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스스로를 청와대와 대통령의 종속변수로 자리매김하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영향력을 모른 체 하는 게 아니다. 그동안의 국정운영에 대한 대통령의 공과를 무시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책임을 청와대로만 미루는 것은 국회의원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우리 헌법이 단순하지만 엄중하게 선언하는 명제이다.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내용도 헌법이 규정한 국회의원의 행동준칙이다. 민주국가에서 법의 근거가 없으면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대통령의 요구라 해도 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보아도 정치의 중요한 행위자는 의원들이다. 기본적으로 행정권의 수반인 대통령의 정치행위에는 제약이 따른다. 이처럼 엄중한 직무를 국회의원들이 그동안 제대로 수행해 왔는지 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노동법 등 민감한 현안은 그렇다 치자. 쟁점이 없는 숱한 법안들도 국회에 묶여 있었다.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을 금지하는 의료법 개정안 등도 처리되지 못했다. 장 막판 떨이하듯 임기 말 임시국회에서 한꺼번에 처리하자고 합의한 게 대단한 일인 양 하는 모습도 꼴불견이다. 대통령이 국회와의 소통을 소홀히 해서 그 많은 법을 붙들고 있었는지 묻고 싶다. 자신들의 할 일은 안하고 정치싸움에만 몰두한 정치권에 대한 심판이 총선 결과이다. 야당도 다를 바 없다. 국민이 자신들을 지지해서 여소야대를 만든 줄 안다면 착각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통령 공격이 자신들의 주된 책무인 줄 안다면 또 다른 심판의 날이 곧 올 것이다.

대통령이 달라지는 건 중요하다. 달라질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족하지 않다.
정치인 각자가 국민으로부터 엄중한 역할을 부여받았음을 자각하는 일이 이어져야 한다.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입법권을 행사하는 중차대한 직무가 그들의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정치가 비로소 달라질 것이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