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를 잊지 않았다, 곧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었다

      2016.06.02 18:31   수정 : 2016.06.02 22:28기사원문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6일 근무 엄수. 밭에 나가 농사 일을 하고 탄광에서 석탄을 캤다. 중노동에 체중이 26㎏까지 빠졌다. 영양실조로 외국인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기도 했다. 육체적 고통보다 참기 힘들었던 것은 기약없는 기다림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아. 아무도 당신을 기억하지 않아. 당신은 이곳에서 나와 함께 환갑잔치를 하게 될 거야." 조사관이 정기적으로 찾아와 부정적인 말을 쏟아놓을 때마다 절망 속에 허덕였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수백 통의 응원의 편지가 날아와 그가 잊혀지지 않았음을 상기시켜줬다. 기도와 함께 시편 91편을 수시로 읽었다. 절망은 점차 소망이 되고 북한 주민을 향한 긍휼의 마음은 더욱 깊어졌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극적으로 풀려난 재미교포 선교사 케네스 배(배준호.48) 얘기다. 그가 2012년 11월 3일부터 2014년 11월 8일까지 735일간의 억류생활을 담은 비망록 '잊지 않았다'(Not Forgotten.두란노서원)를 출간했다.

지난 1일 기자간담회 직후 파이낸셜뉴스와 만난 배 선교사는 살짝 경직된 모습이었다. 북한 억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릴 때는 말을 머뭇거리기도 했다. 원망이나 분노는 전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에게 '잊혀졌다'며 좌절감을 주던 북한에 대해 "잊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 정부와 주민은 구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동포이고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다가올 통일 준비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인 배 선교사는 중국 단둥에서 여행자문회사를 운영하며 관광객을 인솔해 북한을 방문하며 북한 선교의 꿈을 키웠다. 열일곱번이나 북한을 왕래하면서 문제가 생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열여덟번째 방북에서 사단이 났다. 그간 북한을 오가며 촬영한 동영상, 선교편지 등이 저장된 외장하드를 소지하고 있다가 세관에 걸린 것. 특히 상징적인 의미로 적은 '여리고 작전'이 문제가 됐다.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성'에서 따온 선교 프로젝트의 이름이었는데 북한 정부는 이를 '군사작전'으로 판단하고 그를 심문했다.


재판에 넘겨지기 전까지만해도 곧 풀려날 분위기였다. 그는 "(북한 당국이) 시키는대로 혐의를 인정하고 사과하면 돌아갈 수 있다고 회유했다. 그들도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2012년 12월 11일 북한이 장거리미사일(광명성 3호)을 발사하면서 장기전이 될 거라고 직감했다"고 했다.

책에는 배 선교사가 북한의 대미(對美) 협상카드로 이용되며 희망고문을 당한 과정이 생생히 드러난다. 2013년 8월에는 로버트 킹 특사의 방북으로 석방의 희망이 보였지만 북한 정부가 갑자기 방북을 거절하며 무산됐다.

그때부터 그는 노동교화소를 '내 집'처럼 생각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심문하는 검사를 비롯해 노동교화소, 병원 관계자들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한국과 미국에서의 일상, 가족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예수님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남한과 북한이) 서로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자꾸 만들어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이 남한 사람이라고 하니까 '말도 안된다'며 믿지 않더라고요.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이고 국민들이 전부 집없이 길바닥에 나앉아 있는 줄 알아요. 그만큼 외부 세계에 철저히 고립돼 있다는 뜻이죠. 반대로 우리도 북한을 너무 모릅니다. 90% 이상이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어요. 직접 현실을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배 선교사는 "앞으로 탈북민의 정착을 돕고 북한과 세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구체적인 4단계 실행계획도 있다.
△구출(Rescue) △회복(Restoration) △부흥(Revival) △귀향(Return)이다. 그는 "매년 1000여명의 탈북민이 들어오는데 정부 지원 외에 민간의 역할은 미미하다"며 "비정부기구(NGO)를 설립해 직업교육, 일자리 연결 등 자립할 수 있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관심을 갖고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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