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재투표

      2016.06.28 17:16   수정 : 2016.06.28 22:36기사원문
런던 템즈강변에 둥지를 튼 영국 국회의사당은 근대 민주주의의 뿌리다. 원래 궁전(웨스트민스터)이었으나 16세기부터 의회가 쓰기 시작했다. 영국 민주주의는 간접 민주주의다. 유권자들은 대의원(Representatives)을 뽑아 의회로 보낸다. 이들이 의회에서 지역민의 이익을 대변한다.
다른 나라들도 다 이를 본떴다.

대의 민주주의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대리인 문제다. 원래 대리인은 주인(유권자)을 위해 일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대리인이 자기 이익만 좇을 때가 많다. 주주와 전문경영인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전문경영인은 주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대가로 고액연봉을 받는다. 그런데 일부 경영자는 제 연봉만 생각한 나머지 회계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그랬다 후임자가 오면 전임자의 적자를 털어내는 이른바 '빅 배스(Big Bath) 파티'가 벌어진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선거 땐 굽실대지만 일단 당선만 되면 대리인의 본분을 잊고 제 이익만 챙기려 드는 의원들이 많다.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는 확실한 방안이 다수결에 따르는 국민투표다. 대리인들한테 맡기지 않고 유권자들이 직접 국정을 결정하는 제도다. 먼 옛날 그리스 민회(民會)가 직접민주주의의 전형으로 꼽힌다. 그땐 성인 남성 수만명이 직접 투표권을 행사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에 들어선 유럽의 소국 스위스가 직접민주주의의 전통을 이었다. 툭하면 국민투표다. 이달 초엔 월 기본소득으로 우리 돈 300만원을 나눠주는 정책을 놓고 유권자들의 뜻을 물었으나 부결됐다.

국민투표 결과가 불가역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은 헌법 개정이나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국민투표법에는 "국민투표의 효력에 이의가 있는 투표인은 10만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 투표일로부터 20일 이내에 대법원에 제소할 수 있다"(92조)는 규정이 있다.
대법원이 일부 또는 전부 무효 판결을 내리면 재투표를 실시해야 한다(97조).

브렉시트 결과를 놓고 영국에서 국민투표 재투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탈퇴 전에 유럽연합(EU)과 협상을 한 뒤 그 결과를 놓고 다시 유권자들의 뜻을 묻자는 것이다.
난민 유입을 막는 국경 통제권만 강화되면 탈퇴파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근대 민주주의의 종주국치고는 참 모양 빠지는 짓이지만, 누가 알랴.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말고는 무슨 일도 할 수 있는 게 영국 의회라 하지 않던가.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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