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바라지만 '두테르테식 공포정치'는 불안하고 걱정돼"

      2016.07.17 17:45   수정 : 2016.07.17 21:39기사원문

【 마닐라(필리핀)=김유진 기자】"매우 센(strong) 사람이죠. 요즘 사람들이 모이면 대통령 이야기를 해요. 필리핀이 조금 달라질 것 같은가요."

마닐라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는 가르시아씨는 "TV, 라디오에서 연일 마약 사범이 잡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서 기자에게 이같이 되물었다.

지난 15일 마닐라를 찾은 기자가 그의 택시에 타 "지금 라디오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대통령이 마약사범들에게 경고하는 내용"이라고 귀띔했다.

중저음의 목소리에 오싹한 느낌을 주는 배경음악까지 더해졌기 때문인지 타갈로그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듣더라도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가 느껴졌다.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필리핀 대선 레이스에서 크게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던 그는 대선 기간 중 일부 과격한 발언으로 '필리핀의 트럼프'라 불리는 등 이목을 끌며 유력한 대통령 후보자로 떠올랐다.

이 '다크호스'가 실제 권력을 거머쥐게 된 배경에는 '이제 달라져야 한다'며 변화를 간절히 소망한 필리핀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다. 소수의 정치 명문가들이 펼치는 '가문 정치'에 피로감을 느낀 필리핀 국민들이 과감하고 강한 지도자의 급부상을 반긴 것이다.

■두테르테식 공포정치 효과낼까

이 변화에 대한 열망은 이번 대선에서 80%가 넘는 투표율로 나타났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5월 9일 치러진 필리핀 대선에서 마누엘 로하스 전 내무장관을 660만표 이상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실제로 현지 언론을 포함한 외신들은 지난 1946년 필리핀 독립 이후 70년간 이어진 대선 사상 가장 큰 이변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필리핀의 경우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출신지역으로 직접 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필리핀에서는 개인적인 정치 선호도를 드러내더라도 논쟁 거리가 되지 않다 보니 특히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활발한 토론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메트로 마닐라시 마카티 지역의 그린벨트 공원에서 만난 로베르토씨는 "투표를 하기 위해 하루 일을 쉬고 민다나오 지역의 집에 다녀왔다"면서 "새 대통령이 어떻게 필리핀을 변화시킬지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집권 스타일은 정권 초반인 현재 '공포정치'의 형태로 두드러지고 있다.

현지 언론은 필리핀 경찰청이 대선 다음 날인 지난 5월 10일부터 이달 10일 사이 두 달 동안 경찰 단속 과정에서 마약 용의자가 최소 192명 사살됐다고 전했다.

현지언론인 ABS-CBN은 "한 언론의 집계에 따르면 경찰이 사살한 마약 용의자는 200명이 넘는다"면서 "자경단과 괴한의 총에 맞아 죽은 이들까지 포함하면 300명 이상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피의 통치'가 불러온 긴장감은 필리핀 국민들의 일상에도 파고드는 분위기다. 마닐라 시내에서는 어떤 상점, 건물을 들어가더라도 보안요원이 출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메트로 마닐라시 BGC지역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여성은 "필리핀에서는 이미 일상적인 일이지만 새 대통령이 집권하고 난 뒤 더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지난 12일 필리핀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에서 마약 100g을 소지한 채 출국하려던 한국인 20대 여성이 적발돼 현재 도주중이어서 '마약과의 전쟁' 분위기 속 혹시 모를 불상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졌다.

■'비인권적' 목소리도

물론 두테르테의 이 같은 '공포 정치'가 필리핀 국민들로부터 마냥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는 즉결처형으로 범죄 용의자의 인권이 침해되고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두테르테 대통령을 비판해온 레일라 데 리마 상원의원은 경찰이 마약 용의자를 사살하는 과정에서 인권 침해나 관련 법규 위반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기 위한 결의안을 지난 13일 의회에 제출했다.


아울러 필리핀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의 총기 남용과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정부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거세지자 에르네스토 아벨라 대통령궁 대변인은 정부가 모든 공무원에 대해서도 마약검사 의무화를 도입할 수 있다는 의향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필리핀은 경찰관과 군인을 상대로 마약검사를 실시해 양성판정을 받으면 해고하거나 전역시키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july20@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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