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문 표절

      2016.07.21 17:14   수정 : 2016.07.21 17:14기사원문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63년 노예해방 100주년을 맞아 열렸던 워싱턴 평화행진에서 명연설을 남겼다. 킹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네 명의 자녀가 언젠가 피부색이 아니라 능력에 의해 판단받는 나라에 살게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감동적인 연설도 표절 의혹을 샀다. 아치발드 캐리라는 다른 흑인 목사의 연설을 도용했다는 것이다. 이 의혹은 킹 목사가 세상을 떠나고 수십 년이 지난 후 나온 것이어서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인 연설문의 표절 시비는 적지 않게 있었다. 연설의 달인으로 꼽히는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도 표절 의혹을 받은 적이 있다.
2008년 대선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당시 후보와 맞붙었을 때 그는 "내게는 꿈이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실은 자명하다. 우리는 두려움 그 자체 외에는 두려워할 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킹 목사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설이 떠오른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도 198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연설에서 닐 키녹 영국 노동당 당수의 연설을 표절했다. 바이든은 연설 도중에 갑자기 생각이 난 듯 키녹의 연설 첫 문단을 거의 그대로 말했다. 그 구절이 개인적인 부분이어서 '키녹의 삶을 도용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선 민경욱 새누리당 의원의 20대 국회의원 출마 선언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연설문과 비슷해 비난을 받았다. 결국 민 의원은 언론을 통해 사과했다.

최근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부인 멜라니아의 연설이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의 연설을 표절했다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연설문 작성자가 "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시인했다. 멜라니아가 예로 든 문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연설문에 넣어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명연설문 뒤에는 뛰어난 연설비서관이 있다. 시대의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꿰뚫고 연설자가 원하는 바를 알아서 문장으로 엮어낸다. 중요한 연설문은 전문가들이 단어 하나하나, 사실 하나하나를 모두 확인하고 표절 여부도 검토한다.
그러나 마지막 책임은 결국 연설자의 몫이다. 말로써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하는 정치인에게 명연설의 유혹은 강렬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미사여구보다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정성 있는 연설이 청중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

junglee@fnnews.com 이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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