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어길 수 없으니 만나지 말자" 최악 불경기에 교류 원천 차단

      2016.08.01 17:41   수정 : 2016.08.01 22:15기사원문
오는 9월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한국 사회에 일대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관가와 정치권, 교육계는 물론이고 기업들의 대관업무, 언론계의 취재관행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그러나 김영란법은 법규나 시행령 규정이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고, 농수축산업계 등의 피해도 예상된다. 또 전통적인 미풍양속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사회 전반의 변화와 경제주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시리즈로 살펴본다.


"소나기(김영란법)를 피하려면 일단 안 쓰고 보자, 만나지 말자, 다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대응하면 김영란법 하고 상관없는 분들까지도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되면 경제에 상당히 피해가 오지 않겠는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달 열린 '제41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대해 "단기간에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쓰나미처럼 움츠리고 위축되고 막 이렇게 되면 과연 어떻게 되겠느냐"며 크게 우려했다.

5년 전, 변호사로부터 벤츠 자동차를 선물받고도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은 여검사 사건으로 인해 시작된 김영란법이 시행을 앞두고 이처럼 고위공직자가 아닌 서민들만 잡게 됐다는 자조 섞인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단 정치권은 시행 후 문제가 있으면 개정하자는 입장이지만 김영란법으로 내수침체가 본격화되면 그 피해는 국회의원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보상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 외면한 단통법, 휴대폰 판매점 고사

1일 재계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김영란법처럼 법 취지는 좋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오히려 서민들의 발목을 잡는 사례가 과거에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다. 지난 2014년 10월 시행된 단통법은 통신업체와 제조업체가 지원하는 판매보조금 상한을 규제하는 내용이 핵심인 법안이다.

2년이 지난 지금, 단통법으로 인해 문을 닫는 휴대폰 판매점들이 줄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보조금 규제로 최신 스마트폰의 실제 구매가격이 전보다 30만원 정도 올랐고 보조금 규모도 같아지면서 굳이 소비자들이 대리점을 직접 방문할 이유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단통법 시행 후 출시된 지 1년3개월이 지나지 않은 신형 단말기는 33만원 이상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다.

이 같은 보조금 상한제는 단통법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고 비판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신 스마트폰을 주기적으로 교체해왔다는 이모씨(31)는 "단통법 전에는 인터넷뿐만 아니라 대리점을 여러 군데 다녀본 뒤 가격이 가장 낮은 곳에서 구매했다"면서 "지금은 발품을 팔 이유도 없고 가격도 그다지 저렴하지 않아 스마트폰 구매가 꺼려진다"고 밝혔다.

이같이 공정한 경쟁이 저해되고 판매점 피해가 속출하자 단통법 조기 폐지에 대한 법안 발의도 잇따르고 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보조금 상한제 폐지를 핵심으로 한 단통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도 보조금 상한제의 일몰기간을 6개월 단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마트 영업제한, 전통시장 살리지 못하고 소비자 불편 가중

대형마트 영업일수 제한도 규제가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주고 마트에 납품하는 농축수산업계엔 매출 악화를 가져온 사례 중 하나다.

2012∼2013년 두 차례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 기업형슈퍼마켓(SSM) 등 대규모 점포의 영업시간을 오전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범위에서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매달 2일 두도록 하고 있다.

이해춘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강사와 박경영 성균관대 경제연구소 겸임교수 등이 발표한 '영업시간 제한사례를 통한 유통산업발전법의 효과 분석' 논문을 보면 서울시 점포와 전통시장이 현 영업시간 규제를 폐지할 경우 전체 유통산업 매출(2013년 매출액 기준) 순증액은 4조9090억원으로 추산됐다. 이 강사는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는 전통시장이나 주변상권이라는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공평성에 기여하지만, 유통산업 전체로는 매출 증가세 둔화를 초래해 사회적 효율성이 낮아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소비자들의 변화된 쇼핑패턴과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규제라는 지적이 많다. 이는 규제 도입이 대형마트 영업일수를 규제하면 자연스럽게 전통시장이 살아날 것이란 단순한 논리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날에 오히려 소비하는 날을 미루거나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대형마트 규제로 납품업체들이 연간 2조원 이상의 피해를 보고 대형마트 전체가 매출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선진국에서도 이미 실패한 사례가 있다. 프랑스의 경우 40년간 소매업출점 제한 규제를 적용했지만 결국 규제를 풀고 일요일 영업을 허용하고 있다.

■김영란법, '만나지 말자' 내수절벽 불보듯

김영란법도 단통법과 대형마트 영업규제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작 김영란법 논의를 촉발했던 '벤츠 검사' 사건 당사자인 변호사는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고 언론인.사립학교 관계자 등이 추가되는 등 누더기 입법이 되면서 법의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가 400만명 이상으로 대폭 늘었다.

문제는 그 대상이 늘어나면서 학부모가 담임교사에게 모바일 기프티콘으로 5000원짜리 커피 상품을 선물해도 과태료를 처분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일반 국민 누구라도 범법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김영란법의 법 내용과 위법 기준에 대해 아직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김영란법 기준이 아직 모호해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상황이 되면서 농축수산업계, 요식업계, 레저산업 등 민생경제가 단기적으로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연간 11조60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요식업계(8조5000억원), 소비재.유통업(1조9700억원), 골프장 등 레저산업(1조1000억원) 등의 매출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기업 경영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김영란법의 규제는 엄격하나 법 집행은 선별적으로 이뤄질 우려가 있다"면서 "때문에 수사대상이 되는 기업으로서는 방어가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내부고발자, 경쟁업체 등의 각종 악의적 제보, 음해성 투서가 예상되면서 기업활동이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김경민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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