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다리 짚는 금융위의 IB 정책

      2016.08.02 17:27   수정 : 2016.08.02 22:53기사원문
금융위원회가 2일 투자은행(IB) 육성책을 또 내놓았다. '또'라고 말한 것은 전에도 비슷한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자본시장법을 시행할 때 금융당국은 한국판 골드만삭스 출현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 거창한 꿈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도에 묻혔다. 그러자 금융위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2013년 한국형 IB 5개사를 선정했다.
자기자본 3조원이 커트라인이었다. 이때도 한국형 IB 출범의 신호탄이라는 미사여구가 붙었다.

그 뒤 3년이 지났지만 별로 달라진 건 없다. 금융위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투자은행) 제도 도입 이후 증권업 영업이나 경영은 과거 방식을 답습하고 있고, 기업금융 업무도 큰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솔직히 평가했다. "증권업계는 단순 중개 위주.가격경쟁 중심의 영업방식을 지속하고 있다"는 대목도 보인다. 요컨대 5개 대형 증권사들이 투자은행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육성책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임종룡 위원장은 작년 3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제 경력 중에서 가장 오래 한 금융분야가 증권"이라며 "자본시장이 중심이 되는 금융구조로 전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호언에 비하면 새로 나온 정책은 실망스럽다. 기존 IB 정책의 근간은 그냥 둔 채 잔챙이만 손질한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IB를 자기자본에 따라 3조.4조.8조원 이상 등 세 부류로 나누기로 했다. 가장 큰 미래에셋·대우증권 합병사의 자기자본이 6조7000억원이다. NH투자증권, KB투자증권·현대증권 합병사,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은 3조~4조원대다. 문제는 자기자본을 키워봤자 노무라증권(28조원) 등 아시아 경쟁사들에도 한참 못 미친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 등 미.유럽계 IB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을 느슨하게 푼 것도 예전과 다를 바 없다. 증권판 BIS비율로 불리는 NCR는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판단하는 지표다. 금융위는 2014년 봄에도 NCR 산정기준을 대폭 손질했다. 그땐 17년 만의 개편으로, 현실에 맞게 조정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2년 만에 또 산출기준을 바꾼 것은 어쩐지 미덥지 못하다. 증권사의 투자여력을 억지로 늘리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을 도입한 지 7년이 흘렀으나 대형 프로젝트파이낸싱, 기업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업무는 여전히 외국계 IB들의 독무대다. 임 위원장은 왜 한국형 IB가 꽃을 피우지 못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자본금 조금 늘리고 NCR 규제를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정부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미주알고주알 지침을 담은 IB 육성방안 보도자료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시장의 힘을 믿고 자율에 맡겨보자. 박현주 회장과 미래에셋에 자유를 줘라. 정부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는 것만 막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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