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책 5권 5만원이면 해결"… 대학가 불법복제 만연
2016.09.07 17:27
수정 : 2016.09.07 17:27기사원문
지난 6일 정부가 설립.운영하는 충남의 한 대학 인쇄실은 개강을 맞은 학생들의 서적 제본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조모씨(24)는 "전공책 제본이 불법인줄 알고 있다"면서도 "5개 전공 서적을 사려면 20만원 정도 들지만 제본은 5만원이면 해결이 가능해 학기마다 이용한다"고 말했다. 인쇄실 컴퓨터에는 전공 원서 등 서적 내용이 포함된 PDF파일만 5000여개 보관돼 있었다. 실제 책이 없는 학생들도 인쇄실 컴퓨터에서 PDF파일을 확인, 제본을 맡길 수 있는 구조다. 김모씨(25)는 "웬만한 전공책은 PDF파일이 모두 저장돼 있어 학생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전했다. 이곳에서는 책 한권 없이 불법복제물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출판물 불법복제에 강력한 처벌방침을 밝혔지만 대학가에서는 이런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야간 운영, 쪼개기 복사 등 단속망을 피하기 위한 갖가지 수법까지 동원되고 있다.
■"책 사면 손해"..단속 피하기 백태도
H대 관계자는 7일 인쇄실에서 발견된 PDF 파일에 대해 "교수들이 요청한 서적만 PDF파일로 보관, 인쇄했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인쇄실 관계자는 "책을 만든뒤 (PDF를) 따로 삭제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PDF파일로 저장된 서적 목록 확인 결과, 해외 원서, 토익 수험서 등 5000여 가지의 서적이 포함돼 있었다. 저작권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현행법상 책을 불법 복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문체부 방침과도 배치된다. 문체부는 9월을 '대학가 출판물 불법복제 행위 집중 단속기간'으로 정하고 단속에 앞서 대학에 단속 방침을 전달했지만 시정되지 않고 있다. 문체부는 △불법 복제물 100점 이상 적발 △상습 불법 행위 업소는 형사처벌까지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대학이 불법 행위 근절에 적극 나섰으면 좋겠지만 협조가 잘 안된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이같은 행위가 대학가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문체부의 '대학가 출판 집중단속 결과'에 따르면 저작권법 위반으로 압류된 불법출판물은 지난 2013년 1만 2739점(404건), 2014년 1만5474점(369건), 2015년 1만6335점(459건)으로 증가 추세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만7391점(284건)이 압수됐다.
저작권보호센터의 '저작권 통계'에 따르더라도 출판서적물 불법복제로 인한 업계 영업이익 감소가 2012년 124억원에서 2014년 174억원으로 급증했다.
대학가에서는 단속망을 피하기 위한 편법행위를 쉽게 찾을 수 있다. A대 중앙도서관 인쇄소에는 '저작권 관계로 책 복사 및 제본이 불가합니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책 제본을 부탁하자 인쇄실 관계자는 "오후 5시 30분에 다시 와서 맡기라"고 조용히 귀띔했다. 단속 시간대를 피해 불법제본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날 B대에서는 책 제본을 문의하자 인쇄소 관계자가 "먼저 관리자 컴퓨터로 원하는 책의 PDF파일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말했다. 관리자용 컴퓨터에는 제본을 요청한 서적 뿐만 아니라 수백가지의 서적이 검색됐다. 이밖에 서적을 분권 형식으로 나눠 수차례에 걸쳐 제본을 해주는 등 편법 행위도 이뤄지고 있었다. 책의 일부분만 복사하면 단속이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대학, 해결책 적극 모색해야
정작 대학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계약을 맺은 인쇄업체가 저지른 행위이지 대학은 직접적인 불법행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이 학생들 책을 모두 구매해줄 수 없기 때문에 비용 부담 문제 등으로 알고도 방관하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만연한 불법복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과 교수들이 적극 나서야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요즘 학생들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크게 향상됐다"며 "불법 복제문제를 학생과 인쇄소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서가 비싼데다 한 학기 동안 책의 일부분 밖에 수업에 쓰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 책을 사는 것이 손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대학과 교수가 불법 행위를 방관할 게 아니라 적극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