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석구 한미재무학회(KAFA) 신임 회장 "회생불능 기업은 정리하고 실직자 지원에 투자해야"
2016.10.23 17:22
수정 : 2016.10.23 17:22기사원문
【 라스베이거스(미국)=곽인찬 논설실장】 "부실기업을 지원하는 기준은 회생 가능성이다. 살아날 가능성이 보이면 지원하고, 그렇지 않으면 정리하는 게 맞다." 변석구 한미재무학회(KAFA) 신임 회장(54.미 베일러대 교수)의 부실기업 지원 원칙은 깔끔하다. 이 잣대로 볼 때 한국 정부의 대우조선해양, 한진해운 처리는 과연 몇 점을 받을 수 있을까. 변 교수는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KAFA 연차총회에서 새 회장으로 뽑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 전망은.
▲미국 경제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한 연내에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본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세계 경제에 어떤 파장이 올까.
▲인상폭이 0.25%포인트라고 가정할 때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금리인상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움직이는 성향이 있다. 높은 금리는 소비를 위축시키지만 인플레이션은 소비를 증진시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금리인상이 어떻게 경제에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다만 주식시장에는 단기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본다.
―11월 초 미국 대선이 치러진다. 선거 결과가 미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에 대해 강력한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가 당선되면 미국이 국채 의무를 재조정하면서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폭락하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가 당선되면 세금을 과대하게 올려 절름발이 경제를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선거가 실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경제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이 개인의 경제활동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다만 특정 정책의 결과로 특정 산업이 육성되거나 쇠퇴가 가속화될 수는 있을 것이다.
―누가 당선되든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일부 산업에 대해 보호무역의 장벽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의 경제자문들이 보호무역 정책을 여과없이 채택하도록 바라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유무역은 다 함께 잘 살자는 것이고, 보호무역은 나만 잘 살자는 것이다. 서로 나만 잘 살자는 정책이 가져올 결과는 자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성과주의 연봉제 도입을 놓고 정부와 노동계가 맞서 있다. 미국에선 성과연봉제를 어떻게 보나.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예를 들어 보자. 새로 채용되는 교수의 연봉이 10년 넘게 근무한 교수보다 더 높을 때가 많다. 장래가 촉망되는 교수들을 각 대학에서 서로 고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보다 더 많이 주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연봉계약도 다 다르다. 사실 나는 옆방 동료교수가 얼마를 받는지 모른다. 그러나 노조가 결성돼 그러한 고용계약을 제한하는 학교는 최고의 인재를 영입하는 경쟁에서 뒤처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개별적으로 연봉계약을 한다. 이러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다만 몇몇 고용주가 고용시장을 지배하고, 학연이나 지연이 고용을 좌우하고, 상하좌우가 막혀 있는 고용시장이라면 미국식 제도가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회.문화적 변화가 뒷받침될 때 성과연봉제가 진정한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은 부실기업 구조조정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미국은 어떻게 부실기업을 정리하나. 미국 방식을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미국 구조조정의 기본원칙은 자유시장 거래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더 이상 가치를 보존할 수 없을 때 무리하게 기업을 연명시키기보다는 신속히 그 기업의 자산을 다른 기업에 처분하고 채권자들과 주주들에게 분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제도가 뒷받침되어 있다. 하지만 대기업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처했을 때 회생이 가능하다고 인정되면 정부에서 투자를 통해 지원하는 경우가 있다. 그냥 내버려두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금융위기 때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나 보험회사 AIG가 위기에 처했을 때 미국 정부에서 이들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이들 기업은 회생했고 모든 투자는 상당한 수익과 함께 회수됐다. 정부 지원의 주요 기준은 과연 그 기업이 회생할 수 있느냐다. 만일 회생할 수 없는 기업이라면 단지 그 기업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코 바람직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미국 정부가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이들의 경우 투자 회수 가능성이 작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똑같은 경제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생할 수 있느냐, 즉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결정요인이어야 한다. 회생할 수 없는 기업이라면 연명시키기보다는 차라리 정리하도록 내버려 두고 실직자들이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더 나은 투자다. 부실기업 지원은 몇몇 경영진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 증시는 수년째 이른바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스권을 뚫고나갈 돌파구는 없을까.
▲주가는 기업의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 기업들의 수익이 제자리이고 별다른 성장이 기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돌파구가 있을까. 기업들에 묻고 싶다.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거래소의 지주사 개편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나는 거래소 분리 및 지주사 제도로 개편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분명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정치쟁점화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선물.옵션 등 한국의 장내 파생상품 시장은 정부의 규제로 크게 쪼그라들었다. 파생상품 시장이 예전의 위상을 회복할 묘안은 없을까.
▲1997년 처음 한국에서 파생상품 거래가 시작됐을 때 시장의 효율성과 거래에 대해 논문을 썼던 기억이 있다. 당시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상당이 컸고 개인투자자들이 쉽게 거래할 수 있다는 장점이 한국 파생상품시장 요인으로 부각됐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줄어들었고 또 한편에서는 파생상품의 수익을 조작하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거래규제가 강화되면서 개인투자자들이 파생상품시장을 떠나게 된 것 같다. 적어도 파생상품시장이 불공정거래와 수익조작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오명은 벗어야 침체에서 벗어날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파생상품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위험관리의 수단으로서 파생상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투기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풍토에서는 시장의 질적 성장이 이뤄지기 어렵다. 실무자들을 상대로 파생상품을 통한 위험관리의 유익성에 대해 교육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에선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시장이 아직 걸음마 단계다. 미국의 크라우드펀딩시장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은 미국에도 아직 많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2016년에야 비로소 법적으로 가능해진 상태다. 현행법상 기업당 1년 동안 모금할 수 있는 금액이 100만달러로 제한돼 있는 것도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적절한 규제없이 펀딩이 이뤄질 경우 남용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현재 미국에선 크라우드펀딩의 시장확대와 투자자 보호를 최적화할 수 있는 규제의 강도를 조율하고 있는 상태라 볼 수 있다.
―신임 KAFA 회장으로서 포부는.
▲KAFA는 올해 25주년을 지나면서 미국과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많은 회원을 두고 한국 출신 학자들의 연구와 교류를 증진하고 있다. 신임 회장으로서 선배들과 차세대가 교류할 수 있는 KAFA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특히 KAFA의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에게 KAFA의 존재를 알리고 그들의 학술활동과 교류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주력하겠다.
paulk@fnnews.com
변석구 한미재무학회(KAFA) 신임 회장 ■약력 △54세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 박사(금융학) △남인디애나대 교수 △성균관대 초빙교수 △베일러대 교수(현) △한미재무학회 사무총장 △파이낸셜뉴스.KAFA 톱저널 논문상(1회), 신한은행.KAFA 최우수논문상, 미 재무관리학회 최우수논문상 등 다수
*한미재무학회(KAFA)는 해외의 한인 재무.경영학자들이 설립한 학회다. 1991년 설립돼 올해 25주년을 맞았다. 국내지회는 2007년 설립됐다. 현재 회원은 미국.캐나다. 싱가포르.홍콩 등 전 세계에 걸쳐 약 300명에 이른다. 한미경제학회(KAEA)와 쌍벽을 이루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파이낸셜뉴스는 10년째 파이낸셜뉴스-KAFA 논문상을 후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