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옥, 보수·진보 정권 비서실장 맡은 구원투수 "신뢰회복이 가장 중요"
2016.11.03 15:55
수정 : 2016.11.03 15:55기사원문
한광옥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은 3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를 회복하고 대통령을 모시는 데 있어서 민의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비서실장은 "지금 대단히 엄중한 시기이고 참으로 어려운 시기"라면서 "일부 국민이 분노하고 있고 불신이 팽배해있는 그런 사회적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11대 국회때 서울 관악구에서 민한당 공천으로 당선됐으나 국회에서 5.17 내란음모죄로 구속된 김대중 전 대통령 석방과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강도높게 요구한게 인연이 돼 동교동계 캠프에 합류했다. 지난 1999년 11월 비서실장으로 임명돼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보필했다.최순실 파문을 수습하는 특명을 받고 17년 만에 다시 대통령 비서실을 이끌게 됐다.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부터 그는 위기극복의 해결사 역할을 수행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인 1998년 초대 노사정위원장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외환위기로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노사정간 갈등이 극에 달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DJ의 요청을 받아 노사정위원회를 맡아 노사 문제를 극적으로 풀어내며 외환위기 극복의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대중 정부가 또 한 번의 고비를 맞을 때 김 신임실장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전격 투입된다.지난 1999년 2월 터진 '옷 로비 사건' 스캔들이다. 당시 청와대가 휘청거릴때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발탁돼 사태수습의 역할을 맡은 것이다. 최순실 사태 파문으로 박근혜 정부가 최대 고비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것은 김 신임 비서실장의 과거 구원투수 역량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야권 동교동계 핵심인물이었지만 철새 논란에도 휘말린 바 있다.
1997년 대선 당시 'DJP 후보 단일화' 협상의 주역으로 김대중 정부 탄생의 기틀을 마련했고, 김 전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지만 지난 2012년 돌연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합류한다. 당시 대선 캠프에서 '100%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맡으면서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정치적 이념에 대한 논란에 빠진다.
그러나 한 실장은 당시 "지역과 계층간 갈등, 세대 간의 갈등 해소를 근간으로 대탕평책을 실현해 국민 대통합의 바탕 위에서 남북통일을 이루는 과업에 한 몸 헌신하기 위해 이 길을 선택했다"며 지역과 이념을 넘어선 국민대통합을 정신을 강조한다.
당시 대선 레이스에서 그의 역할에 힘입어 당시 박근혜 당선인은 호남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을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같은 인연으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아 왔다.
▲전북 전주(74) ▲서울대 영문과 ▲제11·13·14·15대 국회의원 ▲국민회의 부총재 ▲제1기 대통령 직속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민주당 상임고문 ▲새누리당 제18대 중앙선대위 100%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18대 대통령직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장 ▲ 국민대통합위원회 초대 위원장 jjack3@fnnews.com 조창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