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떠드는 학생 누구야"..'일제 잔재' 구령대, 예산문제로 철거 지지부진

      2016.11.15 16:42   수정 : 2016.11.15 16:42기사원문

"사랑하는 △△초등학교 어린이 여러분.. 거기 떠드는 학생 누구야!"
교장 선생님이 높은 곳에서 운동장에 서 있는 학생들을 내려다보면서 훈시하는 운동장 조회는 한 때 학교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조회에 앞서 교장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앞으로 나란히’ ‘좌우로 나란히’ 같은 구호에 오와 열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이 같은 행위가 일제 잔재라는 지적이 일면서 최근 운동장 조회는 대부분 학교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구령대 또는 조회대라고 불리는 시설 철거는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요원한 상태다.

■조회 사라져 필요 없는 구령대
15일 학계 및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운동장, 구령대, 교사(校舍)로 구성된 오늘날 한국의 학교 건물 배치는 연병장, 사열대, 막사 등 일제감정기 병영과 판박이다.
둥근 마당을 중심으로 4개의 건물을 사방에 배치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초등학교와는 대비된다는 것이다.

서현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일제시대 때부터 근대교육이 시작됐는데 당시 학교를 병영 훈련장처럼 만들었다. 구령대도 그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민족문제연구소 한 관계자는 "높은 구령대에서 교장 선생님이 말을 하고 학생들이 그 아래 줄을 서 있던 모습은 일제 군국주의가 반영된 것"이라며 "교단도 일제 잔재라는 주장이 있으나 좀 더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구령대는 각 학교에서 운동장 조회가 사라지면서 체육대회 등 1년에 고작 1∼2차례 사용돼 활용도가 낮아졌다. 반면 높이가 1∼4m에 달해 낙상 등 학생 안전사고가 우려되고 있다. 더구나 많은 학교에서 구령대 아래를 창고 등으로 사용해 아예 없애기도 어렵고 철거 비용 역시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8월 일제 제국주의 잔재인 구령대를 정비해 학생 교육 공간이나 휴게 공간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경기도교육청은 내년 시범사업으로 25개 학교에 구령대 정비 사업비를 지원, 점차 확대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정작 이 사업은 예산 문제로 무산됐다.

■철거는 아직.. 신설학교 구령대 없어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구령대 1개당 정비 비용을 200만원으로 잡았다"며 "그러나 교육청 예산에서 누리과정 등도 감안해야 하는 해 구령대 정비사업은 예산 반영이 안 돼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털어놨다.

인천시교육청 역시 당장 구령대를 철거하기에는 예산 등의 문제가 있어 일단 신설학교에 구령대를 만들지 않고 있다. 백석초, 장서초, 송일초 등 최근 설립된 학교에서는 구령대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구령대가 없다고 해서 학교 운영에 특별한 불편이나 문제점은 없다고 들었다.
구령대 없는 학교를 도입한 지 2년째 되는 만큼 곧 현장의 공식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며 "일제 잔재 청산이 도입 취지지만 구령대 설치비용 절감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신설학교에는 구령대를 안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 교수는 "구령대를 쓸 일도 없는만큼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며 "구령대가 있던 공간에 다른 것을 설치할 게 아니라 그대로 비워두면 아이들이 알아서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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