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경험 있지만 피임법은 몰라요" 하나 마나한 학교 성교육

      2016.11.19 09:00   수정 : 2016.11.19 09:00기사원문

청소년이 성에 눈을 뜨는 나이는 갈수록 어려지는데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은 현실과 동떨어진 상태에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임신·출산 관련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청소년에 피임을 비롯한 성 지식을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한 학급에 2명 성경험, 피임 실천율은…

올해 질병관리본부가 청소년 6만 804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6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100명 중 다섯 명이 성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명이 정원인 학급의 경우 반에서 두 명의 학생이 성경험이 있는 것이다.

남자 청소년(7%)이 여자 청소년(2.8%)보다 경험 비율이 더 높았으며 남자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전체의 10%가 성관계를 해본 것으로 집계됐다.
성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처음 성관계를 한 나이는 평균 만 13.2세로 2011년 같은 조사 때의 13.6세보다 더 어려졌다.

청소년의 전체 피임 실천율은 48.7%로 성관계 시 피임을 제대로 하는 청소년이 절반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후 피임약 오남용 우려 사례도 급증했다.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파악한 결과 2015년 10대 청소년에 사후 피임약을 처방한 건은 1만 4390건이었다. 오남용 우려 사례는 420명으로 2012년 170명에서 4년 새 147%나 늘었다.

사후 피임약은 고용량 호르몬 제재로 짧은 기간 호르몬을 교란해 배란과 수정란 착상을 막는다. 신체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만큼 부작용 우려가 크다. 한 달에 2회 이상 복용하면 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낙태 경험이 있는 청소년도 상당수였다. 작년 임신한 여학생의 인공임신중절수술 경험률은 73.6%였다. 아기를 가진 청소년 열 명 중 일곱 명이 낙태를 통해 아기를 포기한 것이다.

■ '실효성 제로' 학교 성교육

청소년들의 피임 실천율이 떨어지고 사후 피임약을 많이 찾는 것은 피임을 비롯한 성 관련 지식에 취약한 것과 연결된다.

질병관리본부의 같은 조사에 따르면 2015년 청소년의 73.3%가 성교육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대부분의 청소년이 성교육을 이수하지만 정작 기본적인 성 지식이 부족한 이유는 그 내용이 피상적인 데 그쳐 있기 때문이다.

작년 교육부가 6억 원을 들여 '국가 성교육 표준안'을 내놓았으나 이마저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들끓어 지난 7월 공식 홈페이지에서 삭제, 현재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자극을 주는 옷차림을 피하라' 등 고정적인 성 관념을 반영한 것 외로 중학생용 성교육 교재에서는 '어른이 되어 결혼할 때까지 성관계를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하는 등 금욕하는 데에만 초점을 둔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성교육에 편법 시수가 정당화되고 있는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표준안은 각 학교마다 여건에 맞게 △교과통합형(교과 관련 내용에 맞춰 시간 확보) △전담형(보건교사가 전담) △초빙형(외부 전문가 초빙) △융합형(세 모델 통합) 중 하나를 선택해 운영하도록 권장한다.

교과통합형으로 진행할 경우 고등학교는 보건, 생활과 윤리, 기술가정, 보건 과목을 활용할 수 있다. 교사들은 교과마다 시간을 배정해서 연간 배정된 성교육 시간인 열다섯 시간을 채우는 것은 체계적일 수 없다고 설명한다. 성교육과 전혀 관련 없는 내용까지 성교육 시간으로 인정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는 2009년 발간한 '국제 성교육 지침서'를 통해 5세부터 성교육을 받을 것을 권하고 있다. 아이들을 5~8세, 9~12세, 12~15세, 15~19세 등 각 나이에 따른 지침서를 제공한다.

세계 최초로 성교육을 의무화한 스웨덴은 만 4세부터 성교육, 15세부터는 피임을 교육한다. 핀란드는 1970년부터 성교육을 필수 교과로 채택하고 있다. 미국 역시 유치원 때부터 성교육을 실시하는 등 이른 나이부터 체계적인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캐나다는 역할극을 통해 위험 상황 대처법을 익히고 위생적인 자위 방법을 가르치는 등 적극적인 성교육을 실시한 결과 1995년 1천 명당 49명에 달하던 15~19세의 청소년 임신율을 2005년 1천 명당 29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

한국은 2008년부터 중·고등학생에 연간 열 시간의 성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입시에 밀려 흐지부지된 상태다.


부산에 소재한 한 고등학교의 보건교사는 "학생들이 '남자 친구가 콘돔을 쓰기 싫어하면 어떡하냐'처럼 실제 성관계 상황을 고려한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금과 같이 학생들이 성경험이 없다고 전제하는 성교육이 아닌 더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joa@fnnews.com 조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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