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천경자 미인도 '진품' 결론... 위작논란 25년 끝 누명 벗어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에 대해 검찰이 5개월여 조사 끝에 진품이라고 결론 냈다.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국립현대미술관 전 학예실장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미인도 ‘진품’ 25년 위작논란 종지부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배용원)는 지난 5월 고 천 화백의 차녀 김모씨가 국립현대미술관 전·현직 관계자 6명을 고발한 사건을 수사한 결과 국립현대미술관 전 학예실장 정모씨(59)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기소하고 다른 5명은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처분 했다고 19일 밝혔다.

미인도 위작 논란은 1991년 4월께 천 화백이 미인도 포스터와 원본을 확인한 뒤 재료와 채색기법 등이 자신의 작품과 다르다고 주장하며 처음 불거졌다. 이에 미인도를 소장하고 실제 크기 보다 확대해 아트포스터로 제작 판매해온 국립현대미술관 측이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취지로 기자회견을 하며 논란이 확대됐다.

1999년 청전 이상범 화백 작품 위작사건으로 구속수사를 받던 권모씨가 검찰조사 과정에서 미인도를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해 위작논란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권씨는 천 화백이 사망한 뒤인 2015년 8월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이에 올 5월 천 화백의 차녀 김씨가 검찰에 관련자들을 처벌해줄 것을 요구하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미인도 위작 논란의 중요성을 감안, 컴퓨터 영상분석기법과 DNA 감정, 필적감정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국내·외 미술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하는 등 5개월여에 걸쳐 철저한 감정을 진행했다.

감정 결과 진품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천 화백의 다른 작품에 비해 전체적인 명암대조와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부 전문가의 위작의견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붓터치와 선의 묘사, 밑그림 위에 수정해나간 흔적 등에서 미인도와 진품들 사이에 동일한 특징이 나타난다며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의 유명 감정팀 '뤼미에르 테크놀로지'가 미인도가 진품일 확률이 0.0002%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으나 검찰은 이 팀이 진품임이 확실한 천 화백의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진품확률이 4% 내외에 불과하다고 결론내는 등 감정결과에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결론지었다.

■미인도 “내가 그렸다” 주장 권모씨 “진품이다” 입장 번복
특히 미인도 위작을 직접 그렸다고 주장해온 권씨가 미인도 원본을 확인하기 전까지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해왔으나 그 방법이 미인도 분석 과정에서 드러난 제작방법과 일치하는 부분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권씨는 미인도 원본을 확인한 뒤 ‘(미인도가) 진작임을 넘어 명품에 가까운 수작’이라며 ‘귀한 석채 안료를 사용해 채색한 덧칠의 정도, 깊은 색감 등에 비춰 본인의 위작 수준으로는 절대 흉내낼 수 없는 작품’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이에 검찰은 지난해 11월께 언론에 기고문을 보내 “이 사건은 이미 국과수와 KIST의 과학감정 결과 ‘진품’으로 확정되고 법원에서도 ‘판단불가’ 판정을 내렸다”는 등 허위사실을 적시해 천 화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정 전 실장을 불구속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종결지었다.

검찰은 이번 미인도 위작논란 전면 수사가 “천 화백 사망 후 진실규명을 원하는 유족과 여론의 관심이 큰 점을 감안, 직접수사에 착수한 사례”라며 “미술품 위작은 제작 및 유통과정이 투명하지 않아 발생하기 때문에 실효적인 단속방안 및 유통의 투명성 제고방안 마련 등 문화체육관광부 등 유관기관 사이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편 3700억원 규모로 평가되는 한국 미술시장에서 위작은 시장 신뢰도를 갉아먹는 암적인 요소로 꼽혀 왔다.

지난해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에 진위감정이 의뢰된 미술작품 588점 가운데 무려 40%가 위작으로 판정되기도 했다.

[e-mail]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