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외환위기때보다 심각" IMF공포 끝나지 않았다
2017.01.02 18:03
수정 : 2017.01.02 21:57기사원문
경제가 어렵고 삶이 팍팍해질 때마다 1997년 11월에 있었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등장한다. 우리 경제가 그때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한다는 '공포론'이다. 경제위기 이후 해가 바뀔 즈음이면 각종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대동소이하게 설파됐다.
정부는 내년엔 경기회복의 불씨가 타오를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종전 3.0%에서 2.6%로 대폭 하향했다. 정부가 이듬해 성장률을 2%대로 제시한 것은 외환위기 여파가 몰아쳤던 1999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가 내놓는 다짐과 전망이 다르다.
사회적 현상도 외환위기 때와 '닮은꼴'이다. 국정농단 사건에 드러났듯이 정경유착은 검은 고리를 끊지 못했고, 재벌독점과 대.중소기업 상생 파괴는 여전하다. 정부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외환위기 악몽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20년간 실현된 기업.금융.공공부문 구조조정, 노사관계 개혁, 실업과 복지정책 개선, 재벌 지배구조 개선, 성숙한 사회적 시민의식 등 긍정적인 변화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도 있다.
■경제지표에서 드러나는 'IMF 외환위기론'
우리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던 1997년 이전과 2016년의 각종 경제지표를 비교.분석하면 현재의 경제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통계청의 e나라지표를 보면 2016년 11월 청년실업률은 8.2%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0.1%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같은 달만 놓고 비교했을 때 외환위기를 극복해 나가던 2003년 11월 8.2%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청년실업률은 15~29세 청년층의 일자리가 없는 비율이다. 청년실업률이 높다는 것은 한창 일을 해야 할 나이에 해당 수치만큼 일할 곳을 찾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유는 주로 경기침체, 기업경영 악화 등이 거론된다. 문제는 현재의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한 양상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청년실업률은 1997년 12월 6.9%로 그 해를 마감한 뒤 1998년 3월 12.1%, 1998년 7월 13.3%, 1998년 12월 14.4%를 거쳐 1999년 2월 14.5%로 최고점을 찍었다. 이후 1999년 7월 10.7%, 2000년 2월 9.5%에서 2000년 7월 6.9%, 2000년 11월 6.7%, 2003년 7월 7.2% 등 외환위기를 탈출하려던 국민의 노력과 함께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2016년 2월 다시 12.5%로 치솟기 시작해 같은 해 3월 11.8%, 4월 10.9%, 5월 9.7%, 6월 10.3%, 7월 9.2%, 8월 9.3%, 9월 9.4%, 10월 8.5%, 11월 8.2% 등으로 청년실업률은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청년실업이 극에 달해 더 이상 이 땅에서 살 수 없다고 소리치던 1999년의 3월 13.1%, 4월 11.8%, 5월 11.2%, 6월 10.6%, 7월 10.7%, 8월 9.9%, 9월 8.4%, 10월 8.2%, 11월 8.3% 등과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실상 '장기실업자'로 있는 사람의 수도 이 시대 '한숨'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2016년 8월 현재 국내 전체 실업자 가운데 6개월 이상 장기실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6만2000명 증가한 18만2000명(18.3%)으로 집계됐다.
전체 장기실업자 가운데 15~29세의 청년층 비중은 44%로 가장 높았고, 전년 동월과 비교한 증가폭도 9.7%포인트로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았다. 청년층이 장기실업자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다. 장기실업자 증가 폭은 실업자 통계 기준을 바꾼 1999년 6월 이후 최대이며 실업자 수로 따질 경우 1999년 8월 27만4000명을 기록한 이후 최대치였다. 전체 실업자 중 장기실업자 비율도 18.3%로 외환위기 후폭풍 당시인 1999년 8월의 20%와 가깝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말 '2017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고용.실업률에 대해 "신규채용 축소, 구조조정에 따른 인력감축 등으로 청년과 조선업 밀집지역의 실업률이 상승했다"고 해석했다.
■일자리는 없고 소득증가는 더디고
경제성장률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 제조업 평균가동률, 가계소득 증가율, 기업 신용등급 등도 심상치 않다. 희망의 끈을 찾을 곳이 없다. 청년실업률과 장기실업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다.
기재부는 경제정책방향 발표 때 2016년 최종 경제성장률을 2.6% 수준으로 내다봤다. 당초 3.2%보다 0.4%포인트 낮은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보다 0.1%포인트 높은 2.7%로 잡았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 정부와 OECD가 제시한 숫자가 모두 외환위기 직전인 7.6%와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경제성장률은 일정기간 각 경제활동부문이 만들어낸 부가가치가 전년에 비해 얼마나 증가했는지 여부를 보는 지표로, 한 나라가 이룩한 경제성과를 측정하는 중요 척도다. 1996년 때와 세계 정치.경제적 상황이 다르고 단순 수치만으로 비교하긴 어렵다고 해도 20년 동안 발전을 거듭했다고 자부하는 지금이 오히려 후퇴한 형국이다.
정부는 2017년도 경제성장률 전망도 2.6%로 제시했다. 우리 정부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이하로 제시한 것은 외환위기의 늪에 빠져 있던 1999년 이후 처음이다.
반면 2016년 3·4분기 GDP 대비 가계부채는 2015년 말과 견줘 3.5%포인트 상승한 91.8%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때는 52.7%였다. 2016년 3·4분기 가계부채는 1295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자리가 없고 경제성장은 더디기만 하는 상황은 외환위기 때와 유사한데 빚이 늘어가는 속도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셈이다.
김현정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증가 원인 및 지속가능성 분석' 보고서에서 "가계부채율 증가는 가계의 자산보유 증가뿐 아니라 가처분소득 증가율 둔화, 저축률 하락도 적지않게 기여해온 것"이라며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지속가능성의 경우 주택가격 대규모 폭락 및 경제위기와 같은 큰 규모의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단기간에 급격히 저하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이에 견줘 지난해 3·4분기 전국기준 가계소득 증가율(명목)은 전년 동기 대비 0.7% 상승하는 데 그쳤다. 명목소득에서 물가변동 분을 제외한 실질소득은 0.1% 감소다. 농.어촌을 제외한 도시 가계소득 증가율도 0.6%였다.
소득은 늘어나지 않는데 부채가 증가되면서 자연스럽게 지갑을 닫게 되고, 이는 곧 전체적으로 내수침체로 이어지는 현 상황의 배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김영태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팀장은 '가계소득 현황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가계소득의 증가세 둔화의 경우 임금 증가율이 기업 영업이익 증가율을 밑돌고 도소매, 음식숙박 등 소규모 자영업의 구조적 침체로 연결돼 이들의 영업이익이 낮은 증가에 그치는 점, 가계부채의 증가로 지급이자가 늘어나는 점 등에 주로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소득확대-소비증가-고용창출-인적자본 축적-성장지속-소득확대'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 내수.수출 균형성장모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가계소득 둔화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산업현장도 '팍팍'
산업현장도 쉽지 않다. 2015년 신용평가사들이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을 내린 기업은 159곳으로 전년보다 26곳 증가했다. 이는 1998년 171곳이 강등된 이래 17년 만에 가장 많은 숫자다. 한국호(號)를 헤쳐나가게 하던 노였던 제조업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2016년 11월 제조업 가동률은 73.5%, 2015년 연간 기준으로도 74.3%에 불과했다. 1998년 67.6%를 기록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1996년은 80.4%, 1997년 79.1%, 1999년 76.0%였다. 이대로 가다간 자칫 외환위기 때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말 경제관계장관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주요 경기예측기관들이 세계성장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가운데, 미국의 금리인상과 통상정책 불확실성 등 하방요인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지난 6월 정부 성장률 전망치(연 3.0%) 발표 때보다 성장세 둔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한 나라 경제체질 개선한 '밝은 면'
그렇다고 외환위기가 우리나라에 시련만 던져 준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를 맞이한 것 자체가 그동안 우리 경제정책에 기업.금융 부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사회적 불신과 갈등, 거시경제의 불안전성 등 수많은 구멍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후 나라를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IMF가 요구한 것도 이러한 허술한 정책과 부실한 사회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긴 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땐 체질을 개선한 긍정적인 면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실제 정부는 외환위기가 터진 뒤 곧바로 통화 및 재정긴축, 기업.금융.공공부문 구조조정, 노사관계 개혁, 실업과 복지정책 등에 메스를 들었다. 이를 통해 기업부문의 부실을 해소하고 재무적 안정성을 높였다. 금융부문은 대형은행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부실금융기관을 폐쇄 또는 흡수합병 등으로 정리했다. 자연스럽게 은행의 재무건전성은 올라갔다.
시장경제시스템에서 보면 선진국형으로 개선하는 기회였다. 외국인투자를 끌어당기기 위해 각종 규제완화 정책을 편 결과 외국인직접투자, 외환거래, 자본시장 등의 자유화가 진전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기업지배구조 개선 노력 역시 상당한 결실을 맺었다. 기업회계기준 개정, 대규모기업집단의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 분식회계와 부실감사에 대한 처벌 강화,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금지,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 구조 개선, 신규 순환출자 금지,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개정 등이 꼽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말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 현황을 발표하면서 이사회 감사위원회 설치 비율 증가, 사외이사 추천위원회 비율 증가, 소수주주 권한 행사를 위한 전자투표제 도입 증가 등을 제시하고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제도 도입이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