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내면 정권에 죽을 각오해야".. 억울한 대기업

      2017.01.18 17:25   수정 : 2017.01.18 21:59기사원문

"당시 출연을 하지 않았더라면 박근혜 정권에 죽을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 대통령 간 대가성 뇌물수수 의혹수사에 총력전을 펴면서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대기업들도 잔뜩 긴장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국정을 농단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비선실세 엄벌보다 국내 최대기업 총수 1명의 뇌물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권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기업 사정을 도외시한 채 칼을 휘두른다는 불만마저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 뇌물죄 잡으려 기업 사냥?

삼성, 현대차, SK 등 대기업들은 현 정권 비선실세와 주변 사람들의 사익을 채워주는데 1000억원에 육박하는 회사 자금을 쏟아부었다는 게 특검에 앞서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설명이다. 기업 경영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박 대통령, 최순실, 차은택씨 등의 직간접적인 협박에 대기업들은 막대한 자금을 상납해야 했다는 것이다.
두 재단에 대한 출연금과 별도로 대기업들은 각각 기업 경영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두려움에 특정 사안별로 회사자금을 사실상 강탈당했다.

우선 현대차는 기업 활동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껴 최씨의 딸 정유라씨(20)의 초등학교 친구 부모인 이모씨가 운영한 흡착제 업체 KD코퍼레이션이 11억원 규모의 납품을 할 수 있도록 특혜를 제공했다. 롯데그룹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자금지원을 요청받았다. 박 대통령과 신동빈 회장 면담 직후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롯데그룹이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과 관련해 75억원을 부담키로 했으니 진행상황을 챙기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롯데는 기업 경영 전반에 걸쳐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해 6개 계열사(롯데제과, 롯데카드, 롯데건설, 롯데케미칼, 롯데캐피탈, 롯데칠성음료)를 동원해 지난해 5월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송금했다.

포스코는 세무조사, 사업상 인허가의 불이익 등을 우려해 최씨 요구대로 계획에 없던 펜싱팀을 16억원 정도를 들여 창단키로 한 바 있다. 펜싱팀이 출범하면 최씨 소유의 더블루케이에서 경영을 맡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최씨 지시를 받은 안 전 수석은 당시 포스코 사장에게 "청와대 관심사항이니 더블루케이와 잘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KT 역시 세무조사, 인허가 불이익 등의 직간접적인 협박에 최씨와 차씨가 추천한 인물을 광고담당 임원으로 채용하고 최씨 소유의 플레이그라운드라는 회사에 광고 일감을 몰아줬다.

따라서 특검이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권력과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기업들을 상대로 '보여주기식 수사'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최순실 특검법'에 따르면 이번 특검팀의 수사대상은 총 14건이다. 여기에 수사과정에서 인지한 사건까지 포함, 언제든지 수사대상이 늘어날 여지를 남겨뒀다. 시민단체 등에서 특검에 접수된 고소고발장은 현재 100여건에 달한다.

또 앞서 수사를 진행했던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을 고려하면 최순실씨 측에 금전적 지원을 한 대기업이 50곳을 넘는다. 삼성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도 잠정적인 특검의 수사대상이다. 한시적 조직인 특검이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의혹 전반을 규명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여론이 많은 이유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특검의 수사 흐름상 삼성을 비롯해 다른 대기업에 대한 수사 역시 뇌물죄라는 프레임을 짜놓고 '맞춤형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죄가 구체적인 물증으로 뒷받침된 게 아니고 법리적으로도 다툼의 소지가 많은 상황"이라며 "뇌물이라는 국민적 지지를 얻을 만한 혐의를 정해놓고 짜맞추기식으로 수사를 이어갈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A대기업 관계자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특검 수사가 최순실과 그 주변인이 아니라 기업에 집중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역시 만만한 게 기업 아니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수사 확대에 불안한 기업 "어떤 선택 해야 했나"

기업들은 무엇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2~3년이나 남은 정권의 요구를 감히 거절할 수 없었던 데다 급변하는 기업환경에 '정부 리스크'까지 생기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라는 재계의 억울함도 이런 이유에서다.

B대기업 관계자는 "지금에 와서야, 출연했다는 이유로 특검의 사정 칼날 앞에 서있다"며 "도대체 기업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는지 되묻고 싶다"고 항변했다.
기업마다 최씨 측을 지원한 사정은 다르지만 기업들이 '어쩔 수 없는' 지원에 나선 것은 정부에 의한 경영 불이익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압축된다. 지원 규모 역시 특정 사안이 있을 때 재계 순위에 따라 배분하는 관례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왜 용기 있게 거절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면서도 "단지 우리는 권력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는 '기업인'일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relee@fnnews.com 이승환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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