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생명 담보로 돈벌이 해서야
2017.01.25 17:11
수정 : 2017.01.25 22:31기사원문
고향인 부산에서 진돗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름은 '보리'다. 영특한 보리는 내가 고향 집 근처에만 가도 꼬리를 신나게 흔들어댄다.
지난주 겨울휴가를 받아 고향 집에 다녀왔다. 당연히 보리의 반가운 꼬리질을 기대했다. 하지만 좀 이상했다.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았다. 가까이 가도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 며칠 전부터 그랬다고 한다. 그 좋아하는 밥도 먹지 않고 종일 누워 있단다. 시간을 내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심장사상충에 감염됐다고 수의사가 설명했다. 심장사상충은 개.고양이의 심장이나 폐동맥 주위에 기생하면서 심각한 질환을 일으킨다. 심장사상충 감염을 예방하려면 매달 한 번씩 약을 먹여야 하는데 떠돌이 생활을 했던 보리가 약을 먹었을 리도 없고, 어머니도 약을 먹여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심장사상충은 반려동물에게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치료도 쉽지 않다. 보리는 일단 이틀간 입원을 시켜 집중치료를 한 뒤 3개월가량 주사와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동물에게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비가 많이 나오리라고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치료비가 너무 많이 나와 놀랄 수밖에 없었다. 100만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아직 완치되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다행히 지금은 밥도 잘 먹고 꼬리도 신나게 흔든다고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5일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동물병원에만 독점 공급한 제약사와 유통사, 수의사들을 적발해 같은 행위를 다시 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심장사상충 약은 처방대상 약품에서 제외돼 있기 때문에 동물약국이나 도매상에서도 판매할 수 있지만 이들 업체는 동물병원에만 해당 약을 공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 덕분에 동물병원은 공급가보다 2~3배가량 폭리를 취했다. 소비자는 비싸도 울며 겨자 먹기로 동물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미 병에 걸린 보리는 예방약과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1000만 반려동물 보호자에겐 이제라도 희소식이다. 동물병원과 동물약국이 공정하게 경쟁하게 되면 심장사상충 예방약값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반려동물의 생명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일부 수의사의 의식은 여전히 걱정이다. 이들 수의사는 자신들의 행위가 위법이라는 것을 알고 교묘하게 대처했기 때문에 시정명령이라는 '솜방망이' 처벌만 받을 수 있었다. 공정위는 제약사와 유통사를 제재하면 앞으로 수의사의 이런 행위를 막을 수 있다는데 지켜볼 일이다.
jjw@fnnews.com 정지우 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