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시인, 윤동주' 그를 찾아 떠나는 길
2017.02.02 17:15
수정 : 2017.02.02 17:15기사원문
'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詩)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낭만적 시구(詩句) 속 참을 수 없는 비애, 살면서 한 번은 되뇌어 본 그, 윤동주(1917~1945)의 시다.
어느덧 탄생 100주년이다. 일제강점기 그 암울한 시기를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살다간 그는 영원한 청춘의 별로 우리 곁에 남았다.
100년이라는 세월에도 스러지지 않은 이름이지만 최근 몇년간 그는 열풍의 중심이었다. 윤동주라는 이름은 문학을 넘어 음악, 뮤지컬, 영화로 끊임없이 소환됐고 시대를 초월한 청년정신으로 되살아났다.
"때론 사는 게 허무하고 무기력할 때/ 당신의 육첩방을 밝혔던/ 등불을 기억할게… 당신의 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길."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역사×힙합 프로젝트: 위대한 유산' 특집에서 래퍼 개코와 황광희가 발표한 '당신의 밤'은 윤동주에게 전하는 편지다. 지난해 마지막 날 나와서 수주 동안 음원사이트 순위에 올랐던 이 곡은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 '서시'를 가사에 녹여 감동과 공감을 줬다.
청년으로 죽어 영원한 젊음으로 남았기 때문일까. 윤동주라는 이름은 특히 20~30대 청년들과 더욱 크게 공명한다. 대중문화로 다양하게 변주된 그의 모습은 10대 어린 학생들까지 관심이 많다.
그의 시는 최근 몇 년간 이어지는 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1월 출간한 초판 복각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소와다리 펴냄)는 인터파크도서 '2016 올해의 책' 2위였고, 최근 5년간 6번째로 많이 판매된 시집이었다. 시를 어렵고 고루하다 생각했던 2030세대가 이 시집 구매자의 절반이 넘는다는 것은 그의 시가 이 시대의 청춘들과도 맞닿아 있어서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병원' 中)
현실의 틀에 묶여 좌절과 체념, 불안을 담담히 털어놓는 시 속의 그와 흙수저, N포세대 등으로 대변되는 지금의 청년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아성찰'의 시인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불의에 맞서 괴로워했고 끝내 행동으로 이어졌던 그의 삶은 최근 불안한 정국 속 청년들의 마음도 흔들었으리라.
단지 시로 남았던 윤동주는 그의 삶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기를 원했던 다양한 작품들로 우리와 더욱 가까워졌고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어둠의 시대, 평생을 함께 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을 스크린에 담은 영화 '동주'(2016년)는 11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저예산 흑백영화로는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구효서 작가의 '동주'(2011년), 이정명 작가의 '별을 스치는 바람'(2012년) 등 소설 분야는 물론이고 뮤지컬을 통해서도 윤동주는 새롭게 변주된다. 서울예술단은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작이자 올해 시즌을 여는 첫 작품으로 창작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를 준비 중이다. 오는 3월 21일부터 4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서울예술단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로 2012년 초연부터 2013년, 2016년 공연까지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호평받았다.
윤동주문학관을 품고 있는 서촌은 서울에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드문 곳이다.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서촌'이라 불리는 이곳은 정확하게는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말한다. 사대부들이 많이 살아 화려한 한옥이 즐비한 북촌에 비해 소박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부터 근대화가 이중섭, 이상범, 박노수, 시인 윤동주와 이상 등 예술가들이 이곳을 거주지로 선택한 것도 은연중 흐르는 자유로운 공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얼기설기 친절하지 않게 엇갈린 골목에는 줄무늬가 뱅뱅 도는 옛 이발소, 부모님이 총각 처녀로 데이트하던 시절 즐겼을 만한 중국집, 테트리스.갤러그 등 추억의 게임을 만날 수 있는 오락실이 여전히 성업 중이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개발이 더딘 그저그런 작은 마을이었던 이곳은 최근 세련된 식당과 카페, 공방, 갤러리 등이 몰리며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가 됐다.
무인자동차, 인공지능 의사, 로봇이 일상속에 파고드는 최첨단시대를 살고 있지만 20~30년 전 그때로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에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몰리는 것은 디지털 시대의 목마름에 아날로그 추억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 아닐까.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나와 효자로를 건너 친절하지 않은 서촌 골목을 걸어봤다.
체부동, 통인동, 효자동 그 중심에 자리해 있다. 서울 시내 한복판, 그것도 청와대 코앞에 위치한 전통시장 치고는 규모가 제법 크다. 까마득한 옛날, 설 앞 할머니 손에 이끌려 갔던 기억 속 시골 시장과 달리 깨끗하게 정비됐지만 여전히 구수한 음식냄새와 즐비한 나물거리가 주는 포근함이 있다. 이곳의 명물은 기름 떡볶이와 엽전 도시락. 기름 떡볶이는 빨간 양념국물에 적셔진 전통적 모양이 아닌 빨간 옷을 적당히 두르고 기름에 볶아 나온다. 통인시장 대표 메뉴로 미국의 존 케리 전 국무장관도 맛봤다. 이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엽전을 구매해 시장 곳곳을 돌며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으로 빈 도시락통을 채우는 시장 도시락도 재밌다.
1951년 개업해 무려 60년간 운영됐던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중 하나다. 지금은 헌책방이 아닌 카페로 운영 중이다. 헌책방 안쪽에는 원래 주인이었던 할머니 가족의 역사가 담긴 오래된 가족사진과 물건들이 있다. 헌책방을 운영했던 권오남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함자 하나씩을 따 이름을 지은 나름 낭만이 담긴 곳이다. 아이유의 앨범 커버, 드라마 속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적당히 낡았지만 낭만적 향기가 가득하다.
서촌 골목길을 한참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박노수미술관은 남정 박노수 화백의 자택을 미술관으로 꾸민 곳이다. 서울시 문화재 1호로 1930년대 지어진 고택이다. 원래 조선후기 관료이자 친일파로 알려진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은 집이라고 한다. 박 화백의 40년 삶과 작품세계가 정원과 함께 주택 곳곳에 남겨졌다.
2층 박 화백의 작업실은 원모습이 그대로 유지돼 있다. 한국화단 거장의 그림과 예쁜 정원, 비교적 저렴한 입장료로 누구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왕산 동쪽 능선 아래의 계곡이다. 조선시대 때 이 일대에 흐르는 계곡물의 소리가 맑다 해서 수성동(水聲洞)으로 불렸을 정도로 명승지다. 뒤쪽으로 인왕산이 버티고 있어 암반과 기린교가 펼쳐진 풍경이 장관이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수성동'에 등장해 더욱 유명해졌다.
서울시는 이 계곡을 문화재인 서울시 기념물 제31호로 지정하고 정선의 산수화 속 경관으로 복원했다. 도심 속에 있기에는 아까운 경치다. 계곡을 둘러싼 인왕산길은 머릿속을 비우며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