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 경제는 망했다. 그래도 청년에 희망이 있다.”
2017.03.11 05:22
수정 : 2017.03.11 05:22기사원문
10년 전 '88만원 세대'에서 청년들에게 한 발이라도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선 그들만의 ‘짱돌’을 들라고 했던 경제학자 우석훈씨는 그동안 세상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혹시나 기대했던 ‘88만원 세대’ 현상을 이겨내고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가 찾아왔다.
◇더 위축된 대한민국 청년들
―‘88만원 세대’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살아 있는 경제학’에서의 청년은 어떻게 달라졌나.
▲지난 2006~2007년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의 호황이었다. 당시 연평균 성장률이 거의 5%가 나왔다. 이후로 그때의 성장률을 기록하지 못했다. 당시 돈이 있을 때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투자를 하지 않으면 장기 불황으로 간다는 견해가 많았다. 지금 장기 불황이 왔고, 이젠 돈이 없다고 한다.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들을 찾기하기 위해선 정책적인 방안들을 합의를 위한 ‘테이블’에 올려놔야 한다.
―현재 한국 경제에서의 청년의 역할은.
▲청년의 역할은 크지 않다고 봤다. 10년 전보다 청년들이 더 위축됐다. 청년을 대변하는 단체도 생기고,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지만 주류가 되긴 어려운 상태다. ‘무슨 일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주문하는 게 실제 ‘어떤 일도 하기 어려운’ 상황인 청년들에게 과도한 주문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뷰를 했던 수많은 청년들이 책에서 ‘투표하라’는 결론은 내지 말라고 했다. 투표는 하겠지만 투표를 해봐야 정책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투표 권유는 투표도 못하는 바보 취급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청년, 경제 문제는 모든 연령층과 계층에서 전체적으로 논의해야 할 일이다. 특정 세대가 한 발 앞으로 툭 튀어나와서 풀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청년문제 해법은 없나.
▲청년문제를 풀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지금도 여력이 없지 않다. 다만 10여 년 전보다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당시엔 돈만 쭉 풀어도 분야와 상관없이 해결될 것이라고 봤지만 지금은 굉장히 정교하게 계산해야 한다. 그때는 나름 잘 되고 있었다. 지나고 보니 위기가 아니었다. 지금은 굉장한 위기다. 정교한 계획이 필요한 상황인데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게 어려울 것 같다. 예컨대 청년친화기업 인증제도 실시, 사회적경제 기업 육성과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등에 대한 여지가 충분히 있다. 방법은 있지만 사회의 구성원이 논의해서 대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 수 있느냐가 문제다.
◇갈길 잃은 대한민국 경제정책
‘살아 있는 경제학’에서 우석훈은 대한민국의 경제를 ‘늙은 경제’로 표현했다. 한국 경제가 생명력을 잃어가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정부 정책의 부실함이 있다. 최근 불안정한 정치 상황에서 정상적인 시스템 작동도 위협받는 상황이다. 우석훈은 한국 경제의 상황을 묻는 질문에 “망한 것 같다”고 일침을 놨다.
―부동산이 죽으면 경제성장률이 1% 아래로 하락할 것이란 관측이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2.7%)이 부동산 부문을 빼면 0.4~0.5% 정도라는 관측이 있다. 사실상 부동산이 다 했다. 건설부문이 구축효과(정부지출 확대로 민간투자가 위축되는 부작용)를 만들어낸 셈이다. 공공부문이 필요 없는 곳까지 들어오면 경제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민간부분을 밀어내는 현상이 벌어진다. 쉽게 말하면 도서관 건물을 잘 지었는데 짓고 나서 보니까 책을 살 돈이 없는 것이다. 건설부문이 없었다면 망했다고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채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도로만 인프라가 아니다.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갖춰야할 인프라에 도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와 문화도 인프라다.
―산업정책도 소홀해졌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는 2004~2005년 전후로 설비투자가 늘지 않고 있다. 용량이 안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공장 가동률은 100% 이상으로 돌리고 있다. 현재 설비를 죽어라고 돌리다가 부서지면 문 닫고 나가려고 하는 사람 같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부가 기업을 불러서 투자를 하자고 압박해야 한다. 산업정책이란 이런 것이다. 그동안 산업부 장관에 비전문가들이 왔다. 자유주의 국가라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대부분의 산업이 과정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 간의 협상이 더욱더 필요하다. 특정지역에 신규 투자를 한다고 하면 법인세를 깎아주는 게 가능하다. 지역의 일자리와 인구 늘리고, 기업도 매출을 높이면서 같이 살자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기회 아닌가.
▲말장난이다. 우리나라에선 농업을 4차 산업으로 육성한다고 하지만 바탕엔 토건적 욕구가 있다. 4차 산업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단지를 만들고 환경조성 사업을 추진한다. 그러나 건설업은 3차 산업이다. 4차 산업을 육성한다고 하면서 1차 산업인 농업에 대한 지원금을 3차 산업에 주고 있는 것이다.
◇‘청년경제’ 정책으로 희망찾기
우석훈은 종합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청년 문제를 해결하고,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청년 완전고용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청년친화기업인증제 등의 제도 변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 창출,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법인 ‘청년경제기본법’ 제정은 여러 해법 가운데 하나다.
―청년 완전고용과 기본소득제,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서 가능한가.
▲우리나라 한 해 예산 가운데 새 정부가 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보통 10% 안팎으로 본다. 30~40조원 가량이다. 청년 완전고용을 위한 정책을 전부 이 범위에 다 넣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일부는 가능하다. 우선, 기업 인증 방식이다. 예컨대 ISO9000과 같은 인증제도다. 인증을 받은 기업만 정부가 진행하는 사업에 입찰할 수 있게 하거나 인증기업에게만 정부 지원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또 원자력 발전소를 하나 짓는 대신에 지역에 100개의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 방법도 있다. 미래를 위한 산업에 청년들이 일하게 하고, 고용을 늘리는 데 돈을 쓰게 될 경우 미래와 청년에 대한 투자다. 이른바 ‘이중배당(투자로 인해 발생하는 예상하지 않은 또 다른 이익)’ 효과를 얻는다. 친환경이라는 사회가 생각하는 미래와 함께 고용 창출까지 둘 다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전체 일자리의 25% 가량이 공공부문에서 나온다. 우리나라는 7% 정도다. 정부가 고용을 끌고 가야 한다. 일자리의 90%를 민간에서 맡았던 것은 고성장 때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제 도입 여부는 10년 이상의 기술적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 계층별로 기본소득을 제공할 경우 일부가 반발하며 부작용이 발생한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복지제도를 정리하면 혜택을 받던 쪽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청년정책, 무엇을 우선해야 하나.
▲고용종합계획을 세워야 한다. 공공과 민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지역경제가 조금씩 나눠 맡아서 전체적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공공부문 일자리가 공무원만 의미하지 않는다. 발전, 농업, 소방 등 넓게 생각하면 사회적경제 형태에 포함되는 일부 지역 서비스도 가능하다. 또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국제노동기구(ILO)와 IMF가 꼽는 가장 빠른 경기 진작책이다. 최저임금을 높일 경우 자영업자가 손해를 본다고 하지만 자영업자 개개인에게 보상하기 보단 비용증가만큼 세금 경감이나 보험제도 강화 등으로 전체 자영업자들에게 혜택을 주면 사회적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청년 주거문제도 매입형 임대주택으로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다. 비어 있거나 가격이 싼 다세대 주택을 깨끗하게 고쳐서 임대하면 된다. 다만 집중시키면 안 된다. 고시촌 같은 특정지역에 집중시키면 반대에 부딪힌다. 지역별로 분산시키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관리거점을 중간에 두는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정치인들이 성과로 삼기 위해 대단지의 집을 짓고 싶어서 매입형 임대주택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청년 문제 해결 법안과 선거 연령 하향의 필요성은.
▲청년경제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19대 국회에서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청년 정책에 대한 전체 기본 계획을 기획재정부가 나서서 경제기본계획을 세울 때 추가하자는 것이다. 환경정책 영향 평가를 하듯이 청년고용정책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평가하고, 지방자치단체도 청년 대책을 세우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청년친화기업에 대한 지원 방안도 넣을 수 있다. 투표 연령을 하향하는 것은 좋다. 16세까지 낮춰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인이 아니더라도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줘야 한다.
◇사회적 합의에 미래가 달렸다
대한민국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있지만 청년들만 뭉쳐서는 풀 수 없는 문제라는 게 우석훈의 주장이다. 관건은 찾아낸 해법을 두고 50대로 대변되는 다른 세대, 계층과의 합의를 이뤄낼 수 있느냐, 없느냐다. 구성원 전체가 미래를 결정하는 ‘최적의 방안(Optimail Path)’을 찾는 것이 우석훈이 고민했던 문제다. 그는 책에서 경제적으로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사이의 세대 간 연대가 가능하다고 했다.
―일자리 정책에서 청년과 노인 가운데 우선순위를 두자면.
▲효율적인 것은 청년이다. 하지만 청년에 ‘올인’하는 것은 실행이 불가능하다. 지난 2012년 대선 때 연령대 투표율을 살펴보면 20대 후반이 65.7%다. 전체 가운데 3분의 2가 투표했다. 충분히 많이 한 셈이다. 다만 50대가 82% 투표율을 기록했다. 82% 본 정치인들은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세대별로 조사하면 20대와 50대가 분명하게 갈린다. 선호하는 정치인과 언론이 대표적이다. 문화에선 잘 나뉘지 않는데 노래에선 확 갈린다. 댄스와 트로트로 선호곡이 나눠진다. 20대와 50대의 표준분모를 만드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정책을 만드는 데 과정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 같은 것이다. 같이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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