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성폭력 피해신고 막는 ‘묻지마 역고소’ 가중처벌을"

      2017.03.23 17:23   수정 : 2017.03.23 17:23기사원문

지난해 5월 발생한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많은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을 수 있는 현실이 슬프고 화가 난다"며 거리로 나왔다.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 폭력에 맞서야 한다는 절박함에 '페미당당' '불꽃페미액션' 등 다양한 여성단체가 생겨났다. 이런 흐름 속에 26년째 성폭력 방지와 여성 인권을 위해 줄곧 한길을 걷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사진).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창립 멤버인 이 소장 역시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운동에서 큰 전환점이 됐다고 평가한다.

그는 "3만5000여개의 포스트잇이 주변에 붙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공분했고 그 사건 이후 대안 마련 등을 논의하면서 다양한 단체가 생겼다"며 "상담소는 26년 역사를 가진 단체로, 신선함과 절실함을 보고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덕분에 젊고 좋은 동지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그 열정과 패기, 상상력 등이 저희에게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과 함께 이슈가 된 사건이라면 유명 연예인들이 잇따라 성폭력 논란에 휩싸인 점을 꼽을 수 있다.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을 명예훼손이나 무고죄 등으로 역고소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이 소장은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본인의 성폭력 피해 사건 때문에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갔는데 알고 보니 무고죄로 조사받는 경우도 상당하다. 특히 연예인과 연루된 성폭력 사건의 경우 기획사가 나서서 피고인 변호에 나서는데, 이런 흐름이 다른 성폭력 피고인들에게도 영향을 줘 '안되면 말고' 식으로 역고소를 할 수 있다"며 "이런 경우는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 무고인 경우 처벌하는 게 맞지만 무고의 판단 기준은 성폭력 피해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성범죄라면 단연 디지털 범죄와 스토킹 범죄를 꼽을 수 있다. 디지털 범죄는 연인 간에 몰래카메라를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유포하는 행위 등을 말하며 스토킹 범죄는 현재 경범죄로 분류돼 벌금 8만원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소장은 "현대사회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SNS 등을 사용하는 기본자세를 교육해야 한다. 또 법과 교육이 쫓아가지 못하는 부분을 정치인들이 면밀히 살펴 간극을 메워야 한다"며 "스토킹 처벌 강화는 1999년부터 줄곧 제기됐으나 매번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폐기됐다. 현재도 3~4개 법안이 올라와 있는데 다행히 법무부가 이 부분을 추진해야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 같고 내용이 관건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법.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반적인 인권 감수성과 내재해 있는 사고방식의 개선이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20년 넘게 여성운동을 하면서 체득한 결론 중 하나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소장은 "법.제도를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오히려 우리 개개인이 인권에 대한 감수성,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언론이나 학교, 직장 차원에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면서 "어쩌면 우리 안에 내재해 있을지 모르는 성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 편견이 결국 차별과 혐오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소장은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제안한 클레어법에 대해서도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클레어법은 재범률이 높은 데이트폭력 방지를 위한 가정폭력전과 공개제도로, 교제 상대방의 폭력전과를 경찰을 통해 조회할 수 있다.
이 소장은 "클레어법이 제정된다 해도 지금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정보공개 기준 등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성폭력특별법제정위원회부터 우리 사회에서 많은 성폭력 관련법 제정 운동을 해왔지만 법은 저 앞에 있는 반면 사람들의 인식은 저 뒤에 있는 등 간극을 더 벌려놓은 게 아닌가 하는 성찰을 하게 된다"며 "데이트 성폭력도 결국 사람 간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갈 것인지 접근해야 하는데 이건 결국 교육이다.
무조건 법으로 재단해서 뭘 끊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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