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에는 강하나 전쟁에는 약한 ‘야신’ 김성근

      2017.04.05 20:06   수정 : 2017.04.07 14:46기사원문
김성근 감독과 알고 지낸지 33년째다. 징하다. 김성근 감독은 기자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마력을 지녔다.

해박하고 창의적인 야구 지식은 경탄스럽다. 기자 초년병 시절 김성근 감독으로 인해 나는 새로운 야구 세계에 눈을 떴다.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야구를 볼 수도 있구나.' 종종 감탄했다. 김 감독은 어느 감독보다 진지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놓치고 지나치는 선수들의 작은 버릇도 초고속 녹화장치를 본 것처럼 척하고 끄집어냈다. 그의 탁월함은 두터운 팬덤을 양산했다.

그의 주위엔 도사로 불리는 사람을 비롯해 의사, 연예인, 벤처기업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를 추종하는 기자들도 많다. 그들에게 김성근 감독은 컬트(숭배) 대상이다.

스토리텔링은 김성근 감독의 또 다른 매력이다. 김 감독은 B클래스 팀을 맡아 A클래스로 올려놓는데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다. 태평양, 쌍방울 등에서 김 감독은 신화를 만들었다. 숱한 얘깃거리가 함께 쏟아졌다. 한 겨울 오대산 얼음을 깨트리고 선수들을 벌거벗긴 채 물속에 빠트리는가 하면, 박정현·박경완 등을 무명에서 스타로 키워냈다. 박찬호, 이승엽 등 최고 선수들도 김성근 감독에게 한 수 지도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망가트린 선수도 많았다. 투수 혹사 논란은 악령처럼 김성근 감독을 따라다녔다. 배영수(36·한화)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배영수는 2015년 삼성에서 한화로 옮긴 후 101이닝을 던졌다. 이닝 수는 적었지만 최근 8년 사이 가장 많은 경기(32)에 등판했다.

결국 팔꿈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지난해는 단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다. 여기서 끝나는가 싶었다. 스토리텔링은 이어졌다. 배영수는 지난 4일 홈에서 벌어진 NC전서 604일 만에 승리를 맛보았다. 6이닝을 무실점을 막아냈다. 3피안타, 2볼넷, 5탈삼진. 괜찮은 내용이었다.

배영수의 직구는 130㎞ 후반에 그쳤다. 그래도 리그에서 손꼽히는 NC 타선을 침묵시키기에 충분했다. 프로 통산 129번째 승리였다. 시속 150㎞의 공을 던지게 만든다고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투수의 어깨가 강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시속 130㎞ 투수를 얻어맞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어렵다. 코너워크와 볼 배합의 묘를 터득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 분야에서 김성근 감독은 탁월하다.

김성근 감독은 한 점차 접전에 능하다. 그의 신화는 소규모 전투의 승리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전장의 규모를 넓힌 전쟁에선 약점을 드러낸다. 최근 김 감독은 2군 투수들의 1군 콜업을 두고 박종훈 단장과 충돌했다. 구단은 당연히 거시적 운영을 원한다. 2군 투수의 성장은 구단의 미래다. 작은 상처를 낳게 하기 위해 몸 전체의 면역체계를 망가뜨리는 치료 방식을 내켜하지 않는다.


적절한 접점은 없을까?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인재 등용 원칙을 설명하면서 "믿음이 가야 맡긴다. 맡기고 나면 끝까지 믿는다"고 말했다.
맡긴 이상 김성근 감독을 믿어야 한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야구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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