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주인공? 그들에겐 ‘찬스’

      2017.04.07 16:06   수정 : 2017.04.07 16:16기사원문

“작품 안에서 커버나 언더스터디 역할이 주어진다는 것은 앙상블 파트 외에도 공부할 것이 많아진다는 의미 같아요. 여자주인공과 똑같이 분석하고 노래를 분석하고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요.”
기약 없는 날을 기다리는 건 사실 고통에 가깝다. 하지만 그들은 오리지널 캐스트에 가려진 그들이 아니었다. 긍정적인 가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묵묵하게 스스로를 밝히고 있었다.


‘팬텀’ 크리스틴 역의 기존 캐스트였던 임선혜와 임혜영이 건강상의 이유로 무대에 오를 수 없게 되자 언더스터디였던 배우 김지유가 무대에 올라갈 기회를 얻게 됐다. 더블 캐스팅도 아닌, 트리플 캐스팅에서 언더스터디가 주인공으로써 무대를 한다는 건 기적과 같은 일이다.
실제로 많은 뮤지컬 관객들은 환불과 항의보다는 오히려 김지유를 응원하며 자그마한 실수에도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도리안 그레이’의 배우 나하나도 마찬가지다.
여자 주인공 시빌 베인 역의 원캐스트였던 홍서영 대신에 무려 4번 동안 여자주인공의 자격으로 공연했다. 아쉬움보다는 감사함을 느끼며 또 다른 긍정적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두 배우를 만났다.

◆ 언더스터디를 어떻게 맡게 됐는가
“항상 언더스터디를 생각하고 오디션을 봐요. 사실 배역은 한정적이고, 기존에 그 역을 맡으시는 배우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주연 배역은 아니더라도 언더스터디는 꼭 할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언더스터디를 하면 마음이 힘든데 마음이 힘들어도 하는 게 좋아요.” (김지유)
“시빌 베인 역으로 공개오디션 역을 봤는데, 최종으로 (홍)서영과 제가 남았고 서영이가 캐스팅되었죠. 하지만 ‘팬텀’ 측에서 함께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해주셔서 앙상블과 시빌 베인의 커버로 서게 됐어요. 뽑힐 때만 해도 무대에 오를 거라는 기대는 안했지만 혹시라도 서영이가 아프거나 일이 생기면 제가 무대를 책임져야 하니까 연습 때 계속 서영이 옆에 붙어서 개인적으로 기록하고 연습을 많이 했어요. 제가 무대에 오르게 됐을 때는, 다행히 제작사 분들이 앙상블 부분에서 많이 빼주셔서 연습할 시간을 제공해주셨죠.” (나하나)
◆ 여자주인공으로써 무대 위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이제까지 언더스터디만 다섯 번 정도 해왔어요. 언더스터디라는 게 원래 계획이 안 세워진 이상 진짜로 무대로 올라갈 거라고 생각 못하죠. 올라간 건 ‘팬텀’이 처음이에요. 총 세 번 크리스틴 역으로 무대를 올랐어요. 오히려 공연 진행 동안에는 감격적이라는 생각보다 잘 해내려고 집중만 했던 것 같아요. 커튼콜 할 때 감격이 몰려왔죠.” (김지유)
“‘도리안 그레이’는 데뷔작이었기 때문에 시빌 베인 역으로 섰을 때보다 사실 앙상블 때 많이 울었어요. 막상 시빌 베인으로 섰을 때는 눈물이 나지 않았어요. 걱정은 있었죠. 앙상블 하면서 연습도 충분히 안됐고, 시빌 베 역은 그저 제가 기록하고 보면서 익혀야하는 상황이었어요. 리허설이나 런을 돌아본 적도 없었고 흐름을 잘 모르는 상태로 부분적으로 씬만 맞춰보고 들어갔어요.” (나하나)

◆ 앙상블과 언더스터디, 동시에 해내기 위해 어떤 구체적 연습 과정을 거치나
“크리스틴으로 올라가는 건, 당일 오전 10시에 결정이 됐어요. 그래서 그날 급하게 팬텀과 크리스틴 혹은 필립과 만나야하는 특정 부분들만 무대 위에서 맞췄죠. 분장실에서 대사로 맞추고, 저 혼자 준비했어요. 이 외에 연습 할 때는 원래 앙상블인 제 역할만 해요. 끝나고 모두 다 가고 나면 항상 혼자 런을 돌죠.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차에서도 음악 런을 돌아요. 보통 언더스터디 연습까지 따로 시간을 내주시는 제작사는 없어요. 그래서 저만의 방법을 찾은 게 모두가 퇴근하거나 출근하기 전에 혼자 한 두 시간 먼저 런을 도는 거예요.” (김지유)
“다른 주연 분들과 직접 함께 연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대신, 무대 올라가기 전에 씬 별로 맞춰봤죠. 일주일 전부터요. 따로 공연 시작하기 전에 무대 비웠을 때 일찍 불러서 맞춰보고 그런 식이었어요. 연습실에서는 언더스터디를 위한 연습 기간이 주어지지는 않아요. 런 돌았던 것을 녹음해서 집에서 틀어놓고 혼자 맞춰보는 식이죠. 공연 중에는 무대 뒤 소대에서 혼자 따라하고 그랬어요. 꼭 독백처럼요. 다른 캐릭터들의 동선이 보이니까 그에 맞춰서 혼자 움직이고 의상 갈아입을 때 같이 따라다니고 그랬죠.” (나하나)
◆ 커버와 앙상블을 동시에 소화해낼 때, 다가오는 부담감이나 걱정도 있을 것 같다.
“데뷔 초에는 사실 속상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계속 언더스터디를 해오면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앙상블에 언더스터디라는 역할이 하나 더 주어진 거니까 그것에 충실하기로요. 언제든 무대에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연습을 제대로 해놓자 싶었죠. 그러면 저한테도 얻어지는 게 있어요. 많이 아쉽긴 하죠. 혼자 준비한 것에 대해 평가를 받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니까요. 그래도 제가 이런 환경에 서운해 하면 못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담담하게 제 할 일을 마무리 하려고 노력해요.” (김지유)
“제가 내일 이 공연을 하는 걸 알고 하는 거랑은 제가 모르고 오를 때 하는 거랑은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그게 사실 제일 힘든 부분이죠. 언더스터디는 연습이 정확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연을 해야 한다는 것이 괴로운 게 아닐까요? 제 스스로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객들을 만나야하지 죄송하죠. 두 달간 충분히 연습하고 올라가도 자신 있게 설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없잖아요. 일단, 혼자서 준비하고 무대에 서야한다는 긴장감과 답답함이 슬프죠. 집에서 혼자 노래 부르고 독백하면서 연기하면 간혹 ‘내가 지금 뭐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갑자기 찾아오곤 해요” (나하나)
◆ 커버로써의 공연 이후 행보는 어떻나
“지금은 ‘밑바닥에서’라는 뮤지컬에서 나타샤 역으로 준비 중이에요. 그래도 ‘팬텀’이후로 제 성실함을 좋게 봐주셔서 작품 두 개에서 배역을 맡았고, 이번 작품이 세 번째 배역이에요.” (김지유)
“‘도리안 그레이’ 이후에 보시고 연락해주신 분들이 많으셨어요. 물론 시빌 베인 역보다 동생인 샬롯 역을 했을 때 마음에 드신 것 같긴 했지만요.(웃음) 그리고 ‘인 더 하이츠’에서도 주인공을 맡게 됐죠. 지금은 ‘빨래’ 연습에 한창이고요. 콜 오디션을 처음 보는 거라 정말 신기했어요. 원래 열심히 서류 지원하고 앙상블 오디션을 봤었는데, 배역 오디션을 보니까 신이 났죠. 되게 행운인 것 같아요.” (나하나)

“저는 지금까지 천천히 온 케이스고 느리게 가는 케이스니까, 그만큼 오래하고 싶어요. 큰 욕심보다는 제 할 일을 제대로 했을 때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욕심 부려도 안 될 건 안 되더라고요. 배역의 욕심보다 연기, 노래 레슨 받고 공연하면서 살면 10년~20년 하게 되지 않을까요?” (김지유)
“작품 안에서 커버나 언더스터디 역할이 주어진다는 것은 앙상블 파트 외에도 공부할 것이 많아진다는 의미 같아요. 여자주인공과 똑같이 분석하고 노래를 분석하고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요. 제가 언제 시빌 베인의 노래를 해보겠어요. 저도 배우로써 할 일이 생기는 것이고, 만약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으면 찾아서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커버라는 직책 덕에, 주인공의 드라마와 분석까지 연구할 수 있고 좋은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임무가 주어지는 것 자체가 배우들한테는 행운인 것 같아요.” (나하나) /fnstar@fnnews.com fn스타 이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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