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열 “‘대립군’, 수만 가지 질문 던질 수 있는 영화”
2017.05.31 09:19
수정 : 2017.05.31 09:19기사원문
“‘대립군’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한 가지 생각이 아니라 수만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언제나 떠오르는 기대주 혹은 충무로를 이끌어갈 젊은 배우. 이와 같은 호칭이 줄곧 이어졌던 배우 김무열, 드디어 터졌다. 대표작이 넘쳐나는 쟁쟁한 두 배우 이정재와 여진구 사이에서 환하게 빛났다. 기존에 본인이 지니고 있던 반듯한 이미지도 180도 뒤집었다.
정윤철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대립군’은 영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로 피란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왕세자로 책봉되어 분조를 이끌게 된 광해(여진구 분)와 생계를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이정재 외)의 운명적 만남을 그려냈다.
극중 김무열은 활쏘기에 능하고 전쟁에 도가 튼 야망이 가득 찬 인물, 곡수 역을 맡았다. 동료들을 살뜰히 챙기고 토우를 친형처럼 따르지만, 점점 변해가는 토우의 모습에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며 복합적 감정도 함께 보여준다. 고향에 남겨둔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적과 맞서야 하는 상황 속에서 곡수는 행동한다.
김무열은 직설적이고 화끈한 곡수 캐릭터를 마치 제 옷 마냥 소화해냈다. 덥수룩한 수염과 부스스한 머리 등 외형적으로도 파격적인 변화를 준 것은 물론, ‘최종병기 활’ ‘은교’ ‘연평해전’ 등을 통해 배우로서의 저변을 천천히 그리고 크게 넓혀온 그는 쌓아온 모든 것을 ‘대립군’으로 쏟아 붓는다. 언제나 삐딱한 것 같지만 그 속에서 꿈틀대는 처절함과 생존으로 인한 불안감을 회색빛 색채로 그려냈다.
“일단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어요. 대립군이라는 소재가 굉장히 자극적으로 다가왔거든요. 조선시대에 돈을 받고 전쟁에 나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서 신기했고, 사실 군인도 아니라 명예를 위해서도 아닌, 먹고 살기 위해서 전쟁터에 나갔던 사람들이잖아요. 광해 이야기이지만 광해를 포함한 수많은 백성들에 의해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제 취향이었어요.”
‘대립군’의 명장면 중 하나가 있다면, 광해와 곡수가 백성 앞에서 함께 펼치는 애절한 가무와 창이다. 베테랑 뮤지컬 배우이기도 한 김무열의 창은 말 그대로 정말 ‘기깔’ 난다. 영화적으로 펼쳐진 당시 상황에서 구슬피 퍼지는 목소리는 영화 속 백성들뿐만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의 마음까지 함께 울린다. 작정하고 오랜 기간 준비했을 법한 퀄리티지만 사실은 곡명마저 전날 밤에 급히 결정된 것이라고.
“저를 캐스팅하면서 절 위해서 노래하는 부분들을 넣으셨대요. 그게 사실 생뚱맞을 수도 있어서 걱정을 되게 많이 했었죠. 의견도 분분했었어요. 제 노래에 맞춰 광해가 춤까지 추잖아요. 그런데 현장에서 하니까 되겠다 싶더라고요. 실제로 감동을 많이 느꼈어요.”
“실제로 민요는 예전에 배웠었는데 창이라는 건 배워본 적 없어요. 심지어 노래를 전날 밤에 감독님이 결정해주셨어요. 그래서 진구와 저는 모텔 방에서 밤새도록 저는 노래하고 진구는 춤췄어요.(웃음) 다행히 스태프와 배우들만 있던 모텔이었어요. 겨우 준비했어요. 그 장면을 찍는데, 그렇게 울컥하더라고요. 왕이 해줄 건 없지만 춤이라도 춘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우리가 뭘 해달라고 외치는 걸까 등의 복합적인 것들이 올라왔어요.”
‘대립군’은 임진왜란 당시 치열한 국지전을 리얼하게 그려내기 위해 실내 세트촬영을 배제하고 올로케이션으로 촬영을 감행했다. 전국의 산이란 산은 모두 다 답사했다고 자신할 정도로 제작진들은 공을 들였고, 그 덕에 배우들은 극을 넘어서 현실로까지 넘어와 극한의 처절함(?)을 맛봤다고 우스갯소리로 입을 모았다.
“보면서 고생한 티가 안 났을 것 같았는데 다행이네요. 가마 드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가마를 들고 비탈진 산을 올라갔어요. 발에 뭐가 밟히는지도 몰랐고 허리까지 오는 죽은 나무까지 올라가야 했어요. 땅도 계속해서 움푹 패여 있었거든요. 살면서 허리가 아파본 적이 없는데 이걸 하면서 처음으로 다쳤어요. 제 옆에는 오광록 선배님이 계셔서 제가 다 들었어요.(웃음)”
정윤철 감독을 ‘한량’이라고 표현한 김무열은 그를 향한 애교 섞인 투정도 잊지 않았다. 그는 “미웠어요. 저희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감독님이 저희를 안 보시고 모니터만 보고 계셨어요. 그 상태로 ‘한 번 더 갈게요’ 라고 말하시고요. 정말 속옷까지 다 젖었어요. 저희가 길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어요.(웃음) 그래도 ‘고생했겠다’고 말씀해주실 때 고생한 티가 나는구나 싶죠.”
‘대립군’을 대표하는 장면이자 백성들의 처절함과 사투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분은 단연 강계전투가 벌어지는 산성 신이다. 광해와 백성들을 비롯한 대립군들은 자신들을 혹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대치하던 곡수는 광해를 향해 애절하게 성토한다.
“그 날이 실제 4차 촛불집회날이였어요. 그래서 다들 마음이 거기로 가있었어요. 찍을 당시에는 여자 스태프들이 울기도 했어요. 저도 광해를 향해 나오라고 소리칠 때 곡수의 마음뿐만 아니라 광화문에 계시는 분들의 마음으로 외쳤었어요. 실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함께 울었어요. 그 때 흘렸던 눈물은 진짜에요. 이거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고 이런 체험을 하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특히, 상업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동시대의 것들에서 큰 공감을 하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거든요. 시대를 뛰어넘는 동질감을 느꼈고 작품에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죠. 배우로서 소중한 경험을 한 것 같아요.”
극중 곡수는 누구보다 토우를 믿고 의지하며, 그에게 있어서 토우란 리더이자 지표와 같은 존재다. 언제든 칼이 날아올 수 있는 상황에서도 등을 맞댈 수 있는 신뢰 그 자체이기도. 실제 인터뷰 중에 이정재 이야기를 늘어뜨리며 설레어하고 아이처럼 들뜬 김무열에게도 그의 존재는 꼭 토우였다.
“(이)정재 형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제가 곡수를 꺼낼 수 있게 기다려주시고 북돋아도 주셨죠. 그동안 이정재라는 배우를 지켜보고 바라보는 팬이었다면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함께 연기하는 팬이 됐어요. 첫 촬영 때가 기억나요. 강가에서 대립군들이 강계행을 시작하는 장면이었어요. 그 때, 수많은 생각에 잠긴 정재 형의 모습 하나로도 모든 게 다 보이는 거예요. 비주얼과 몸짓, 눈빛 보고 ‘저게 대립군이나’ 했어요. 저는 정재 형님의 모든 장면이 다 좋았어요. 너무 멋있어요.”
여진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어 현장에서 그의 모습은 어떠했냐 물어보니 “진구가 그렇게 재미있는 성격은 아니더라고요.(웃음) 아직 여전히 진지해요. 그 나이대의 독보적인 안정감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되게 귀여운 게 나무 꺾어다가 뭐 만들고, 돌 탑쌓기 등을 하고 있으면 어린 애들이 형들 쫓아다니는 아이처럼 초롱초롱하게 ‘그게 뭐에요?’하면서 귀엽게 형들한테 다가왔었어요.”라며 미소 지었다.
충무로 최고 흥행 배우로 손꼽히는 이정재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여진구의 호흡, 그리고 현 시대를 관통하는 저릿한 메시지를 담은 ‘대립군’을 향한 흥행 기대도 빼놓을 수는 없을 테지만 오히려 김무열은 담담했다. 대신, 관객과의 공감에 대해서만큼은 절실했다.
“다른 작품이랑 조금 다른 느낌이에요. 위로나 위안 같은 것들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받으시면 좋겠어요. 앞으로 또 더 해야 할 숙제들이 많잖아요. 계속 힘을 모아야하고. 여건이 안 되시면 나중에 VOD라도 보시고 함께 공감하시면 좋겠어요.(웃음)”
/9009055@naver.com fn스타 이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