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에 순국선열과 나란히 안장된 친일파 '논란'

      2017.06.05 17:19   수정 : 2017.06.05 17:19기사원문



#. 육군 중장 출신 김창룡(1920~1956)은 대표적인 친일 인사라고 역사학계는 지적한다. 학계에 따르면 그는 일제강점기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 독립투사를 대거 체포했다. 그가 해방 전 2년 동안 적발한 항일조직은 50여개에 달한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세력에 가담해 반공 투사로 변신했다. 그는 1952년 부산 정치파동의 계기가 된 ‘부산 금정산 공비 위장사건’을 꾸미는 등 용공조작을 일삼았다.
그가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을 주도했다는 증거 역시 다수 발견됐다. 그러나 김창룡은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69호에 묻혀 있다.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씨(1858~1939)와 장남 김인씨(1918~45)가 묻힌 애국지사 묘역과 마주보고 있는 곳이다.

■규모 크고 높은 곳에 안장
6일 제 62번째 현충일을 맞았지만 현충원에는 김창룡과 같은 친일 인사가 다수 안장돼 있다.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이들의 묘지는 현충원 내에서도 규모가 크고, 높은 곳에 있다. 현행법상 친일 행적이 명백히 드러났더라도 이장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현충원에서 천안함 용사, 독립운동가 등 순국선열과 친일 인사가 나란히 묻힌 이유다.

5일 찾은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묘역에는 김창룡을 비롯해 육군소장 백홍석(장군1묘역 176호), 육군 소장 이용(장군2묘역 61호), 해병대 중장 김석범(장군1묘역 71호) 등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이 드러난 인사가 다수 묻혀 있었다. 그들의 행적이 기록된 묘비에는 친일 이력은 모두 빠져있고 해방 후 공적만 나와있어 한 눈에 확인이 어렵다.

그러나 김석범(1915~1998)은 해방 전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며 항일 독립군을 잡아들이며 신의주에서 방공사령관까지 지냈다. 일본군 중좌 출신인 백홍석(1890~1960)은 신의주에서 방공사령관으로 활약하며 일본에 충성했다. 정부는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위원회’를 통해 이들을 반민족 행위자로 규정했으나 현충원에 안장됐다.

이용 등 친일 군인들은 해방 전 만주국군과 간도특설대, 일본군대 소속으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독립군의 소탕을 담당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친일 인사 76명이 묻혀 있다. 모두 군, 경찰, 관료 출신으로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을 올린 인물들이다 .

해방 후 정부 요직에 오르며 사망 후 국가유공자로 인정돼 현충원에 묻히게 된 것이다.

이들이 대거 묻힌 장군 묘역은 국가 원수 묘역과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묘역은 일반 사병·장교(3.3㎡)에 비해 8배나 크고 이들의 업적이 쓰인 비석은 성인 여성 키 만하다. 관리자들은 주기적으로 영양제를 섞은 약품을 묘역에 뿌려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문제는 현행 ‘국립묘지법’ 상 친일 행위가 드러나더라도 국가가 이장시킬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김창룡 등 친일인사 파묘 시위가 매년 벌어지지만 이장되지 않고 있는 이유다. 현재 유일한 방법은 유족들이 이장을 하는 방법 뿐이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은 지난 19대 국회 때 김광진 전 의원이 발의했지만 폐기됐다”고 밝혔다. 연구소 측은 6월 내로 친일 세력의 이장을 강제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마련해 20대 국회에 발의를 요구할 계획이다.

참배온 유가족들은 순국선열과 친일 세력이 함께 묻혀 있다는 사실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군 2묘역에 묻힌 아버지(육군 소장)를 찾은 A씨는 “친일파 세력이 현충원에 묻혔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평생 나라를 위해 사신 아버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라며 “법을 개정해서라도 반드시 이장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육군 병장 출신인 아버지를 찾은 B씨 부부는 “아버지는 6·25전쟁 때 북한군 총에 맞아 평생 장애를 앓았다가 돌아가셨다”며 “아버지가 현충원에 친일파와 함께 묻혔다는 걸 아셨다면 통탄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방 후 나라 헌신했다면..."
시민들 가운데는 강제 이장이 가혹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해방 후 반공 투쟁 등 공적을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충원에서 만난 김영자씨(64·여)는 “해방 전에는 친일에 가담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다”며 “해방 후에 공산당을 물리치고 나라에 헌신했다면 오히려 전쟁 영웅”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오상인씨(65)는 "동생도 국가유공자이지만 현충원에 자리가 없어 묻히지 못하고 있다"며 "친일파가 현충원에 있어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게 말이 되느냐. 이장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를 포함한 시민단체들은 6일 현충일을 맞아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김창룡 등 묘 이장 촉구시민대회’를 열어 현충원 내 친일파 묘지를 찾아가 파묘(破墓) 퍼포먼스 등을 할 계획이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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