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인생 48년, 뮤지컬 '명성황후' 제작자 윤호진 "어떤 작품이든 다 때가 있어… 빛을 보려면 인내해야지"

      2017.06.08 20:12   수정 : 2017.06.08 22:02기사원문
"남들이 칠십이다, 칠십이다 하니까 그런가보다 생각하게 됐지 사실 그런 인식조차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칠순이라고 후배들이 나서서 잔치도 열어주고 공연도 해주겠다고 하니 그냥 이번 기회에 그동안 함께 했던 선후배들 한자리에서 볼까 하는 생각에 그러라고 한거죠. 또 마침 뮤지컬 '찌질의 역사'를 대학로 무대에 올린 상태라 공연이 비는 월요일에 따로 장소를 대관할 필요도 없고 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네요."


올해로 48년째, 뮤지컬 제작사 에이콤의 윤호진 대표가 뮤지컬.연극계에서 활동한 세월이다. '명성황후' 등으로 창작뮤지컬의 시대를 활짝 연 그는 한국 뮤지컬의 살아있는 역사다. 그리고 여전히 현장에서 무대를 진두지휘 하는 현역이다.

이런 그의 70세 생일이 개인의 경사가 아닌 한국 뮤지컬계의 경사가 됐다.

지난 5일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는 그의 7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고고80' 공연이 열렸다.
공연계 내로라하는 인사들과 안재욱, 정성화, 김소현 등 스타 배우들이 모여 윤 대표의 공연 인생을 함께 축하했다. 또 지난 3일부터 수현재씨어터에서 초연되고 있는 뮤지컬 '찌질의 역사' 팀이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기념 공연을 펼쳤다. 공연 제목 '고고80'은 70세를 넘어 80세까지 쭉 건강하게 공연계에서 순항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이날 그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극단 미추의 손진책 대표는 "대책 없이 간덩이만 부은 윤호진의 극단적 낙관주의가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의 브로드웨이 공연도 가능하게 했다"며 "앞으로도 돈키호테처럼 돌진하길 바란다"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의 48년 공연 인생을 하나로 묶는 '돈키호테'라는 단어에 대해 윤 대표는 "솔직히 뮤지컬은 정말 엄청난 제작비가 드는 장르여서 한번 적자가 나면 힘들었고 내가 예전에 도와줬던 곳에 가서 얘기해도 다시 도움받기도 어렵고 스스로가 구차하게 느껴져 마음 속으로 참기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며 "농담 삼아 얘기했지만 '이래서 사람들이 번개탄을 사러 다니는구나' 생각이 들었던 적도 여러번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그러나 어느 순간 낙관주의로 바뀌면서 마음이 평안해지고 차차 해결이 됐던 것들 또한 봐왔다"며 "망할 것 같았지만 결국 많은 관객들이 존재하고 좋아해주셔서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감사를 표했다.



1970년 극단 실험극장에 입단하며 공연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20대 후반이었던 1977년 연출한 연극 '아일랜드'로 동아연극상 최연소 수상자가 된다. 이후 1980년 '신의 아그네스' 등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스타 연출자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던 중 1982년 옛 문화예술진흥원의 연극연출가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뽑혀 영국 런던에 가게 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도착 첫날 뉴런던시어터에서 갓 막이 오른 뮤지컬 '캣츠'의 초연을 보게 된 것. "이거다"라는 생각이 번뜩 스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1983년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연출한 후 이듬해 바로 뉴욕 유학길에 오른다. 뉴욕대 공연예술대학원에서 4년간 체계적으로 뮤지컬을 배운 후 1991년 공연제작사 에이콤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뮤지컬 인생이 시작된다. 10년간의 유학생활을 견디며 그 끝에 나온 결과물이 뮤지컬 '명성황후'다. 1995년 초연된 이 작품은 한국 창작 뮤지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에서 공연을 한 뒤 뮤지컬 본고장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등지에서 성황리에 공연됐다. 그리고 2009년엔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영웅'을 올리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올해 들어서야 '영웅'이 흥행에 성공했어요. 참 오랜시간 기다리면서 '이 작품 정말 괜찮은데 반응이 왜 이러지' 하며 혼자 섭섭하기도 했던 시간들이 있었죠. 물론 계속 주목을 받았지만 제 생각만큼 폭발적이지 않았던 거에요. 근데 이번에 깨달았어요. '시간이 필요한 것이구나'라고. 어느 것이든 각각의 시기가 있는 건데 인내를 하지 않으면 빛을 볼 수가 없는 경우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된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얻게됐죠."

고희를 맞이하면서 지나온 인생을 반추해보게 됐다는 그는 "앞으로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향후 10년 동안 어떻게 살지 계획을 세워보고 있다"며 "예술가에겐 정년이 있는게 아니어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지만 앞으로 10년간 시간을 아껴서 효율적으로 차근차근 계획들을 실천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펼치는데 매진할 계획도 밝혔다. "단기적으로는 새로 시작한 '찌질의 역사'가 자리잡을 때까지 뒷바라지 하는게 제 몫이죠. 이것저것 체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어제까지도 계속 공연장에 나갔어요. 배우들 컨디션은 어떤지, 기계들은 잘 작동되는지 체크하고요. 원래 매번 공연 올릴 때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매일 공연을 봐요. 꼭 제가 없는 날은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오늘은 생일이라 가족들이랑 저녁을 먹는 바람에 못갔는데 아까 1막 끝나고 인터미션 때 어떤가 전화로 확인했더니 별 문제는 없었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장기적으로는 한국 뮤지컬계를 이끈 1세대 선배로서 국내 뮤지컬 시장을 안착시키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쓸 생각이다.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기구를 통해 정부와 논의를 하고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 여전히 자립하지 못하고 있는 시장 구조를 제대로 정비하는 일도 참 중요해요. 거기에 중국 등과 협력해 공동 소재를 개발하는 등 한국을 넘어 아시아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 앞장서는 게 제가 해야 할 몫이자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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