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대기 업무 종사자… 합법적 차별
2017.06.18 17:37
수정 : 2017.06.18 18:41기사원문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 경비원 A씨(64)는 18년째 '감시' 근로자다. 용역업체는 경비원이 감시직이라며 지방노동청에 '감단직' 신청을 했고 근로감독관은 서류심사를 통해 승인했다. 사실 A씨는 '감시 업무 외'의 일을 더 많이 한다. 새벽 6시 출근해 오전에는 미화원으로서 주차장, 아파트 외곽 청소를 하고 곧바로 화단 잡초 제거, 생활 쓰레기장 청소를 이어간다. 지하실 전기 시설 점검 및 광고전단지 수거도 그의 몫이다. A씨는 "순찰은 CC(폐쇄회로)TV가 있어 보조 업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승인 사업장 8천여곳..주휴수당, 가산수당 못받아
매주 월요일에는 120여 세대에서 재활용 쓰레기가 쏟아진다. 분리수거는 A씨가 도맡는다. 주민들이 귀가하는 오후에는 주차요원으로 '주차 차량'과 실랑이를 벌인다. 외부 주차 차량은 쫓아내고 주차된 모든 차량 번호를 작업지에 옮겨 적는다. A씨는 "사고가 났을 때 가해 차량을 찾기 위해 오전, 오후마다 차량 번호를 적는다"며 "과거 한번 빠뜨리자 주민의 항의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자정 무렵 3.3㎡ 남짓한 경비실에서 잠을 청한다. 무릎을 굽혀야 누울 수 있는 나무 침상 머리맡에는 경비 외에도 40개 업무가 빼곡하게 적힌 '업무 매뉴얼'이 붙어 있다. A씨는 "1년 계약직인데 사용주에게 부당함을 말하거나 다른 잡무를 거부하면 해고된다"며 "18년 동안 실태조사를 나온 근로감독관은 한 번도 못 봤다"고 설명했다.
감시.단속적 근로자 제도가 오.남용된다는 지적이다. 업체들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감단직' 업무에 해당되지 않아도 신청을 남발하고 고용부는 현장실사 없이 서류 심사를 통해 승인 도장을 찍어준다는 불만이다.
파이낸셜뉴스가 18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용부로부터 감단직 승인을 받은 사업장은 지난해 8499곳으로, 2011년 4871곳에서 2배 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승인 인원은 4만421명에서 4만5301명으로 증가했다. 현장에서 '감단직'에 해당됐던 업무가 다양해지고 기계적 감시 시스템으로 해고자가 늘었는데도 '감단직' 적용자는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이다.
현장 근무자들이 감단직 조항을 '족쇄'라고 하는 것은 감단직에 해당하지 않는 근로자에게도 강제 적용해서다. 반면 근로자가 취소 판정을 받기란 사실상 어렵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전기 관리자로 일하는 정모씨는 지난해 4월께 용역업체로부터 이제부터 '단속직'에 해당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기계, 전기 등 시설관리직 28명이 포함됐다. '단속직'은 업무 시간에 비해 대기 시간이 현저히 많은 경우다. 정씨를 포함한 해당 직원들은 모두 거부했지만 용역업체는 감단직 신청을 했고 노동청은 승인했다. 정씨는 "근로감독관에게 현장실사를 요청했더니 공연장 한 곳에서 30분 정도 실사하더니 승인했다"며 "24시간 업무를 하는데 일부만 훑어보고 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30분 실사하더니 승인"… 대부분 서류심사
축구장 30여개 규모의 예술의 전당 내 공연장에는 총 4만여개의 전등이 붙어있다. 정씨는 이를 매일 확인하고 공연장 내 모든 전기시설 역시 유지, 보수한다. 또 공연장 밖 외등, 조명 점검, 냉각수 교체, 주차장 공사현장 점검, 안전점검 등을 하고 일일, 주간, 월간계획대로 움직인다. 정씨는 "하루에 대기 시간은 극히 일부"라며 "임금을 적게 주고 연장근로를 무제한 시키기 위한 사측의 용도"라고 주장했다. 정씨 등 직원 28명은 지난해 6월 "단속직 신청이 부당하다"며 서울고용노동청을 상대로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상혁 한국노총 노무사는 "사용자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부당하게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신청하는 경우가 많아 분쟁이 이어진다"며 "고용부도 명확한 지침이 없고 현장 점검을 할 여력이 충분치 않으니 사용자가 서류를 잘 만들어 내면 승인해주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