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말수, 가득차는 박스… 마늘 다듬는 마음은 뿌듯

      2017.06.27 20:00   수정 : 2017.06.27 22:01기사원문

【 파주(경기)=윤경현 남건우 기자】지난 21일 아침 NH투자증권 직원들의 농촌일손돕기를 따라나섰다. 농민들이 모여 만든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의 계열사다운 선택이다.

최악의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즐거운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하필이면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짓날이었다. 이른 무더위에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을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들은 터라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무더위에 약한 스스로를 자책할 뿐이었다.

■흙먼지 속에 사장도, 대리도 구슬땀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의 민간인출입통제선 접경지역인 경기 파주 당동2리가 목적지였다. 지난해 5월 김원규 NH투자증권 사장이 '명예이장'으로, 임직원들이 '명예주민'으로 결연을 한 후 지속적인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는 마을이다.

약속시간(오전 8시50분)에 맞춰서 도착했건만 일찍 나온 30여명의 봉사자들은 벌써 작업이 한창이었다. 마치 지각한 학생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하는지 설명을 들을 새도 없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늘대 자르기는 마늘의 뿌리와 대를 분리하는 지극히 단순한 작업이다. NH투자증권 직원들은 "지난해 가을에 와서 직접 심고 간 마늘이라 더 애착이 간다"고 했다. 당초 수확하러 오려 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다듬는 일을 도와주게 됐다.

산처럼 수북하게 쌓인 마늘을 다듬고 또 다듬어 바닥이 보일라치면 어느새 다른 봉사자가 다시 마늘을 쌓았다.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옆사람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침묵이 길어졌다. 대신, 마늘을 다듬는 손길은 점점 더 빨라졌다.

구슬땀을 흘리고 있던 윤상원 인프라운영부 대리는 "처음 해보는 거라 몸이 뻐근하다"면서도 "농민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힘든 것보다 보람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마늘을 이리저리 뒤집을 때마다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김경환 오퍼레이션본부 상무는 "장갑이 아니라 마스크를 준비했어야 한다"면서 "이게 말수를 줄어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고 농을 건넸다.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한 시간을 꼬박 매달려서야 박스 하나를 겨우 채웠다. 무거워진 박스와 반대로 마음은 가벼워졌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김 사장이 일손을 거들기 위해 작업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작업복 차림의 김원규 사장은 "마늘로 유명한 경북 의성이 고향이라 어렸을 때 마늘농사를 지어봤다"면서 "마늘에 관해서는 전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작업을 시작하고 20여분이 흐르자 김 사장도 말수가 적어졌다.

NH투자증권의 모든 임직원은 1년에 10시간 이상 봉사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전년도에 봉사활동시간을 채우면 하루의 휴가를 준다. 함종욱 에쿼티세일즈사업부 대표는 "여기저기 쫓아다니다 보면 20∼30시간을 넘기기 일쑤"라며 "김장 담그기도 해봤는데 정작 집에서는 김장을 하지 않고 사먹는다"며 웃었다.

이날 봉사자들이 작업한 마늘은 30㎏짜리 박스 120여개로 4t이 넘었다. 서너명의 농민이 한다고 치면 3∼4일은 꼬박 매달려야 하는 물량이라고 했다.

■연내 30개 마을과 결연… 연중 농촌일손돕기

같은 시각 마늘작업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사과밭에서는 추 매달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과나무에서 위로 솟은 가지를 골라 추를 매다는 것이다. 이런 가지를 아래로 내려야 사과나무가 햇빛을 골고루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가지를 잘 고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했다.

봉사일꾼들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 45g짜리 추 수십개가 담겨 있었다. 사과나무가 상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가지를 골라 추를 매다는 모습이 아기를 다루는 것처럼 보였다. 사과밭은 대략 5000㎡로 460여그루의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1년에 거둬들이는 사과는 7∼8t이다.

원용태 에쿼티솔루션부 과장도 작업에 완전히 빠져든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30분 정도 지나면서 익숙해졌단다. 그는 "사과농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며 "앞으로는 사과를 먹을 때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과밭 주인인 성연석씨는 "사과나무에 추를 매다는 일은 수시로 해야 하는 작업"이라며 "NH투자증권 직원들이 도와준 덕택에 올해는 사과농사가 더 잘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일손돕기는 오후 1시가 조금 못 돼서 끝이 났다. NH투자증권 직원들은 "수고했다"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옷에 잔뜩 묻은 먼지를 서로 털어주기도 했다. 따가운 햇살에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중에는 "가을에는 사과 따러 오겠습니다"는 약속을 하는 직원도 있었다.

실제 NH투자증권의 농촌봉사활동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는다. 도농(都農) 협동사업 '또 하나의 마을 만들기'를 통해 전국의 30개 마을과 결연을 하고, 연간 2회 정도 방문해 부족한 일손을 돕고 있다. 특히 마을과의 교감을 늘리기 위해 26개 마을에서는 최고경영자(CEO) 및 부서장을 '명예이장'으로 삼았다. 김 사장이 당동2리의 명예이장이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당동2리 역시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외부인의 손길이 간절하다. 마을에서 70대는 젊은 축에 속하고, 주민 대다수가 80∼90대여서 일손 구하기가 쉽지 않단다.
성흥식 당동2리 이장은 "이렇게 봉사활동을 나와주지 않았다면 사람을 사서 해야 하는데 인건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자식들도 못해주는 일을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들이 와서 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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