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장진호 용사들과 흥남철수작전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

      2017.06.29 10:44   수정 : 2017.06.29 10:44기사원문


【워싱턴D.C.(미국)=조은효기자】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3박 5일의 일정으로 28일(현지시간)오후 워싱턴D.C.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 첫 공식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해병대 박물관에 건립된 장진호전투 기념비를 찾아 한·미동맹이 얽힌 가족사와 개인적인 인연에 대해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의 장진호전투기념비 헌화는 한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흥남철수 작전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아호에 오른 피란민 중엔 저의 부모님도 계셨다"면서 "저의 가족사와 개인사를 넘어서서, 저는 그 급박한 순간에 군인들만 철수하지 않고 그 많은 피난민들을 북한에서 탈출시켜준 미군의 인류애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이 세계전쟁 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인 이유"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흥남철수와 관련해 항간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줬다. "제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항해중인 12월 24일, 미군들이 피란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사탕을 한 알씩 나눠줬다고 한다. 비록 사탕 한 알이지만 그 참혹한 전쟁통에 그 많은 피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준 따뜻한 마음씨가 늘 고마웠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졌으며 몇 장의 종이 위에 서명으로 맺어진 약속이 아니다"면서 "더 위대하고 더 강한 동맹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굳게 손잡고 가겠다. 위대한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함께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장진호 전투(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1일까지)는 무려 17일간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혹한 속에서 미군(제1해병사단 1만5000여 명)과 우리 육군(제7사단 3000여명)이 10배가 넘는 12만명의 중공군(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를 말한다. 미군 전사에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될 만큼 치열했던 싸움이었다.

한국전쟁 기간 전사한 미군 총 3만5000명 가운데 4500명이 장진호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고, 7500여 명이 부상당했다. 때문에 장진호 전투는 한·미 관계를 '혈맹'으로 볼 수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 지목된다. 장진호에서의 희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공군의 함흥지역 진입을 2주간 지연시켜 흥남철수작전(1950년 12월)을 가능케 했고, 미군은 불리한 전세 속에서도 무기를 바다에 버리고 그 자리에 피란민 9만1000명을 태워 남쪽으로 탈출시켰다.

영화 '국제시장'의 첫 장면에 당시 상황이 실감나게 그려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인류 역사상 최대 인도주의적 작전이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의 부모와 누이도 흥남철수 작전의 대명사인 빅토리아 메러디스호를 타고, 경남 거제로 이주했다.

문 대통령의 기념비 헌화는 '미군이 구해준 피란민의 아들이 한국의 대통령이 돼 미국 땅을 밟았다'는 점에서 한·미 동맹과 각별한 인연이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문 대통령이 이번 기념비 참석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면서 "전용기 안에서 기념사 원고에 직접 줄을 치고 긋는 등 원고를 재수정하는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 보수세력의 종북 프레임에 대항해, 6.25 당시 공산당 입당을 거부하고 흥남철수때 메러디스호를 타고, 가난한 피란민의 삶을 택했던 선친의 삶을 언급한 바 있다.

이날 행사엔 미 정부 인사 대표로 로버트 넬러 해병대 사령관 등이 참석했으며, 장진호 전투에 이병으로 참전했던 스티븐 옴스테드 중장을 비롯해 흥남철수작전의 주역인 로버트 루니 제독(당시 빅토리아 메러디스호 1등 항해사), 토머스 퍼거슨 대령(피란민 승선을 지시한 에드워드 알몬드 장관의 외손자), 미군 측에 피란민 승선을 설득한 고 현봉학 박사의 자녀인 헬렌 K.현 보울린 부부가 참석했다.

장진호 기념 전투비는 지난달 4일 건립됐으며, 건립비용(60만 달러, 약 6억8000만원) 중 3억원을 우리 정부가 지원했다. 기념비 상단엔 장진호 참전 용사들이 배지로 달고 다니는 '고토리의 별'이 구조물로 형상화 돼 있다.
장진호 참전 용사들은 당시 전투가 벌어진 장진군 고토리에서 눈보라가 그친 밤, 밝은 별이 뜬 것을 신호탄으로 포위망을 뚫었다 해서 '고토리의 별'을 그려 넣은 배지를 단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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